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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피해 분리된 아이는 다시 외톨이가 된다…갈 곳 없는 아이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양부모의 학대로 짧은 생을 마감한 정인이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정인이가 안치된 경기도 양평의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서 5일 오후 추모객들이 놓고 간 꽃과 선물들을 한 가족이 바라보고 있다. 뉴스1

양부모의 학대로 짧은 생을 마감한 정인이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정인이가 안치된 경기도 양평의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서 5일 오후 추모객들이 놓고 간 꽃과 선물들을 한 가족이 바라보고 있다. 뉴스1

“형제가 갈 곳이 없습니다. 하룻밤만 잘 수 있도록 해주시면 안 될까요.”

지난 5일 오후 8시쯤 경기도 소재 한 피해아동쉼터(아동 쉼터)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경기 성남시에 사는 6살과 2살 형제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부모의 학대를 피해 긴급 분리됐는데, 갈 곳을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쉼터 측은 고민 끝에 “형제를 받지 못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쉼터 내 정원인 7명이 이미 찬 상태였고, 보호 중인 아이들이 최근 예민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추가로 아이들을 받는 건 무리였다. 아동 쉼터 대신 일반 청소년 쉼터로 가게 되면 아이들은 학대 치료를 받기 힘들어진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측이 수차례 연락한 끝에 형제는 안양에 있는 아동 쉼터로 이동했다.

최근 이 아동 쉼터는 지난달 중순에도 안산에서 긴급 분리된 남아(10) 수용 요청을 받아주지 못했다. 최근 2달여 동안 4차례나 거절을 해야 했다. 아동 쉼터 관계자는 “이 쉼터에 있는 남아 7명 중 장애 아동이 4명이다. 사회적 발달 수준이 1.5세인 아이도 있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이 제한돼 잔뜩 예민해 있는 상태다”라면서 “보육교사가 3명인 상황에서 기존 아이들을 돌보기도 벅차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분리’는 제2의 정인이를 막을 수 있는 최우선의 조치다. 지난달 국회는 피해 아동을 부모로부터 분리하는 ‘즉시 분리 조치’를 명시한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아동학대 피해를 막기 위해 법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지만, 앞의 피해 아동 사례를 보면 미완의 제도라는 게 현장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개정법은 지자체장이 보호 대상 아동을 보호 조치하는 경우, 학대피해가 우려되면 아동을 즉시 분리해 일시보호시설 또는 학대피해 아동 쉼터 등에 일시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피해 아동을 부모로부터 분리해도 갈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어서 현장에선 미봉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학대받은 아이들은 다시 ‘갈 곳 없는 외톨이’ 신세가 되는 셈이다.

‘분리’ 되어도 갈 곳 없는 아이들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에 따르면 학대피해 아동 쉼터의 정원은 약 1000명이다. 2018년 기준 아동 재학대 신고 건수는 약 2500명이다. 경기도 한 쉼터 종사자 황모(55)씨는 “아동 쉼터를 광역 단위로 적어도 3~4개는 두고 시별로는 남녀 전용 아동 쉼터를 하나씩 설치해야 한다. 경기도 내 대부분의 시·군에는 성별과 관계없이 아동 쉼터가 하나씩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15년 이상 아동보호 업무를 맡은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수도권 내 학대 피해 아동이 갈 수 있는 임시생활시설은 아동 수보다 턱없이 부족하다. 장애인 아동은 더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용 중인 아이들을 돌볼 책임이 있는 만큼 무조건 피해 아동을 추가로 받으라고 강요하긴 힘들다”고 덧붙였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즉시 분리를 강화하기 전에 아동 쉼터를 늘리기 위한 법적 제도 정비가 먼저라고 꼬집었다. 김 변호사는 “2회 연속 신고가 아니면 즉시 분리를 안 할 수 있는 개연성을 남겨둔 것은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분리 시에 갈 수 있는 아동 쉼터나 위탁가정 등을 확충하고 시설을 유지할 인력구조를 만든 후에 즉시 분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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