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입학생 영어 1등급 17%p 줄었다, 교수들 "수능 절대평가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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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달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자고등학교에 마련된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달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자고등학교에 마련된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영어과목이 절대평가로 바뀐 후 학생들의 영어실력이 떨어졌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영어관련학술단체협의회(영단협)는 6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수능영어 절대평가 4년 중간점검 결과를 발표하며 “학교 교육 정상화를 취지로 도입된 수능 절대평가가 학교 영어교육의 위축을 낳았다”고 했다. 영단협은 한국영어영문학회·한국영어교육학회·한국영어학학회 등 31개 학회의 모임이다.

서울대 입학생 중 영어 1등급 17.5%p 줄어

대학 교양영어를 가르치는 교강사의 절반 이상(53%)은 ‘최근 학생들의 문법지식이 저하됐다’고 했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이용원 교수가 전국 대학 교강사 171명을 상대로 설문한 결과다. 또 65.3%는 '학생 간 영어실력 격차가 커졌다'고 답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영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약화된 두 가지 이유를 고르란 질문에선 ‘수능 영어영역 절대평가’를 꼽은 이들이 77.2%로 가장 많았고 ‘영어영역 점수 대입 반영율 하향조정’이 62%로 뒤를 이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대 입학생 중 수능 영어 1등급 비율은 절대평가 도입 이후 눈에 띄게 줄었다. 상대평가 시절인 2015~2017학년도엔 서울대 입학생의 85.7%가 수능에서 영어 1등급을 받고 들어왔는데, 절대평가 실시 이후인 2018~2020학년도엔 그 비율이 67.2%로 떨어졌다.

절대평가가 도입된 이후 수능 영어 1등급을 받는 학생 비율은 2배 이상 늘었는데도 서울대 입학생 중 1등급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이는 영어 성적이 낮아도 예전보다 서울대 입학이 쉬워졌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대학 입시에서 영어의 반영 비율 하락과 변별력 상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밝혔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열린 지난달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열린 지난달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고3 영어수업 없는 학교도…“국영수 평가 동일해야” 

대학 입시에서 영어의 영향력이 줄면서 영어 교육은 고교에서도 점차 외면받고 있다. 연구진이 서울 소재 일반계고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고2~3학년 학생이 1·2학기 내내 수학을 배우는 경우는 학교당 평균 299명, 국어는 295명이었지만 영어는 226명에 그쳤다. 3학년에서는 영어를 아예 가르치지 않는 학교도 적지 않았다. 2학기 기준으로 수학을 안가르치는 학교는 1곳, 국어는 6곳 뿐이지만 영어는 14곳에 달했다.

영어 수업을 줄이면서 영어 교사도 줄고 있다. 영어 교사는 7년 전의 절반도 뽑지 않는다. 2014학년도에 672명 수준으로 뽑았던 전국 공립 중등 영어교사 임용 선발 인원은 2021학년도에 258명으로 줄었다.

영단협은 국어·영어·수학의 수능평가가 동일한 방법으로 실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경남 강원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절대평가를 하려면 신뢰도와 변별력을 갖춘 제대로 된 평가를 국·영·수학 모두에 동일하게 실시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상대평가로 돌아가는 것이 나은 방식”이라고 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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