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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12년간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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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장정훈
장정훈 기자 중앙일보 팀장
장정훈 사회2팀장

장정훈 사회2팀장

안산이 몸살을 앓고 있다. 안산은 조두순 출소 훨씬 전부터 두려움에 떨었다. 부랴부랴 CCTV와 방범초소를 늘리고 무술 경관과 순찰 인력을 충원했다. 안산 시민들은 조두순이 혹시 내 옆에 숨을까 불안해했고, 이런 안산을 바라보는 우리는 그저 어딘가에 깊숙이 숨기만을 바랐다. 조두순 출소를 앞두고 안산과 안산을 바라보는 속내는 이렇게 달랐다. 그런데 느닷없이 나타난 유튜버가 조두순을 우리 앞에 끄집어내 다시 묻고 있다. 아동 성폭행범죄를 어떻게 처벌할지, 죗값을 치르고 돌아온 성폭행범과는 어떻게 지낼 것인가. 조두순 사건 당시 모두가 치를 떨었지만 정작 우리는 그가 갇혀있는 12년 동안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트북을 열며 12/16

노트북을 열며 12/16

조두순 집 앞에 24시간 카메라를 들이대는 유튜버들에겐 조두순 처벌이 부족했다는 분노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실제로 검찰은 12년 전 조두순을 형법상의 강간죄로 기소했다. 조두순 사건 발생 5개월 전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범죄는 더 무겁게 처벌하는 성폭력방지법이 개정됐는데도 말이다. 법원은 한술 더 떠 술에 취해 저지른 범죄라며 주취(酒臭)감경해 12년 형을 선고했다. 최고 무기징역형에 처할 수 있던 성폭행범을 솜방망이 처벌한 사법체계에 대한 불만이 유튜버의 난동 배경이다. 최근에도 법원은 아동 성착취물로 수익을 얻은 손정우에 대한 미국 송환을 불허하는 등 사회적 눈높이에 못 미치는 처벌을 계속하고 있다.

조두순 집 앞의 밤낮을 가리지 않는 시위는 다시 사회로 돌아온 성폭행범에 대한 준비 부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조두순 출소가 다가올수록 안산 시민이 불안해했던 것도 안전망이 부실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우리는 지난해 4월 조두순 법을 만들었다. 성폭력범을 1 대 1로 보호 관찰하는 제도다.

하지만 재범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 성폭행범 200명을 선별한 법무부는, 정작 이들을 관리하는 보호관찰관은 26명밖에 확보하지 않았다. 또 출소 후 재범 위험성이 높은 강력 범죄자를 일정 기간 관리 시설에서 생활하도록 하는 보호수용제를 둘러싼 논의는 한 발도 나가지 못했다. 성범죄자 치료냐 이중처벌이냐는 논란 속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하지만 논의 자체가 멈춰 서있다.

조두순의 집 앞에선 아직도 일부 유튜버가 24시간 카메라를 들이대고 담벼락을 기어오른다. 성폭력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에 대한 합의도, 죗값을 치르고 돌아온 범죄자의 재범 방지 대책도 게을리한 사이 사인(私人) 간 낙인찍기가 횡행하는 것이다. 박찬걸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단언한다. “낙인찍기는 범죄자를 고립시켜 오히려 범죄 유혹에 빠지게 하는 부정적 효과를 낸다.”

장정훈 사회2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