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 맞은 안전자산…금·달러·채권값 일제히 급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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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지난 8월 금 펀드에 8000만원 넘게 투자한 최모(41)씨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금값이 연일 하락하는 바람에 한두 달 사이 1500만원 가까이 손해를 보고 있어서다. 최씨는 “금값이 내년까지 계속 오른다는 얘기를 듣고 투자했는데 막차를 탄 것 같아 후회된다”고 말했다.

안전자산·위험자산 ‘머니무브’ #국내 금값 7월 고점 비해 21.4% 뚝 #달러가치 7개월새 10% 넘게 빠져 #뭉칫돈 몰렸던 채권도 탈출 행렬 #인플레 우려 금값 전망은 엇갈려

국제 금값.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제 금값.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때 고공 행진을 했던 금·달러·국채 가격이 일제히 급락하고 있다. 30일 한국거래소 금 시장에서 g당 가격은 6만2970원에 마감했다. 지난 7월의 고점과 비교하면 21.4% 급락했다. 국내 금값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주요국의 대규모 ‘돈 풀기’의 영향으로 한동안 상승세를 탔다. 지난 7월 28일에는 g당 8만10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올해 초와 비교하면 41% 뛰어오른 가격이었다.

국제 금값도 비슷한 움직임이었다. 지난달 27일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값(내년 2월 인도분)은 온스당 1788.1달러에 거래됐다. 올해 들어 최고가였던 지난 8월 6일(온스당 2069.4달러)과 비교하면 13.6% 하락했다.

달러인덱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달러인덱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뒤늦게 금을 샀던 투자자들은 원금을 까먹는 신세가 됐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기준 국내 금 펀드 12개의 최근 한 달 수익률은 -4.4%였다. 3개월 수익률은 -9.4%로 더 나빴다. 최근 석달간 15% 넘게 까먹은 펀드(블랙록월드골드)도 있었다.

달러값도 급락하고 있다. 유로·엔·파운드 등 주요 여섯 개 통화와 비교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지난 3월 102.8에서 지난달 27일 91.8까지 내렸다. 3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달러당 1106.5원에 마감했다. 지난 3월 19일 달러당 1285.7원까지 원화가치가 하락(환율은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8개월 만에 원화가치는 달러당 180원가량 뛰었다. 달러값이 싸지자 일부 투자자들이 ‘달러 사재기’에 나서면서 지난달 국내 달러 예금 잔액은 역대 최대로 불어났다.

국고채 3년물 금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고채 3년물 금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때 뭉칫돈이 몰렸던 채권시장에서도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시장금리의 지표가 되는 3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은 지난 8월 5일 연 0.795%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하지만 30일에는 연 0.983%로 상승했다. 채권 금리가 올랐다는 것은 채권값이 내렸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송승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 전망이 바뀌면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을 팔고 주식 같은 위험자산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미국 뉴욕 증시의 다우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3만 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달러당 원화값의 경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완화(저금리) 정책 기조 등으로 내년에 1040원대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값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금은 안전자산이기도 하지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방어수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저금리 장기화로 내년 상반기에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 ‘헤지’(위험 회피) 수단으로 금이 다시 주목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최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위기감은 1970년대 이후 지금이 최고”라며 “금값이 수개월 안에 23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호주의 맥쿼리는 “내년 금값이 1550달러 선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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