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하고 확진되면 징계?”…특별방역 지침에 공직사회 술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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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을 했다가 확진되면 문책을 한다는데, 말이 되나요?”

인사혁신처, 공직자 대상 특별방역 지침 하달 #송년회·신년회 등 자제, 회식하다 감염되면 문책

23일 서울시의 한 공무원은 정부가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특별방역지침을 내리자 이런 하소연을 했다. “지난 8월처럼 특정 감염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코로나19를 어디서 어떻게 걸릴지 알 수가 없는데 문책한다는 발표는 지나치다”는 것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인사혁신처가 마련한 '공공부문 방역관리 강화방안'의 일환으로 공공기관 직원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특별방역지침'을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중앙부처 공무원 외에도 지방공무원,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직원까지 “불요불급한 모임을 취소하고 연기하라”는 것이다.

서울 동작구 선별보건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동작구]

서울 동작구 선별보건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동작구]

 인사처의 '공공부문 방역관리 강화방안'에 따르면 업무와 관련된 종무식과 시무식을 비롯해 회의 등 모든 '공적 만남'은 “규모를 불문하고 불요불급한 경우는 취소 또는 연기”하게 돼 있다. 필요하면 비대면으로 하되 대면이 불가피하면 참석자를 최소화하고 식사를 최대한 자제해 달라는 내용도 담겼다.

 업무와 관련 없는 송년회와 신년회·동호회 등도 똑같이 자제하도록 했다. 입주자 대표회의를 비롯해 친구 모임, 계 모임과 같은 모든 사적인 만남도 언급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런 방역 관리 지침을 내렸는데도 회식이나 식사 모임을 통해 확진자가 발생하면 문책을 하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문책 지침에 대해 인사처 관계자는 “지침을 위반한 공직자에 대한 별도 징계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확진자가 발생하면 기관장의 지침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해 문책하겠다는 메시지”라고 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은 상황에서 공직사회가 솔선수범하자는 취지”라는 것이다.

서울시 “수험생 직원 재택”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뉴스1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뉴스1

 이에 ‘징계’에 예민한 관가에선 볼멘소리가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기도 경찰은 “ 공무원이 모범을 보이는 건 좋은데 문책이나 징계가 능사는 아닌 것 같다”며 “요즘엔 감염경로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데다, 모임을 안 했어도 감염되는 사례가 속출하는데 단순히 감염됐다고 문책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경기도청의 한 공무원은 “회식과 모임 금지 조처가 내려와 다 취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권고 지침이라 의무 사항은 아니라곤 하지만 너무 한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직자가 모범을 보이는 것은 맞지만, 문책까지 할 이유가 있느냐”면서 “확진자도 피해자로 공개 규정을 강화해놓고 공무원은 모임에서 코로나19에 걸리면 문제 삼겠다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고 털어놨다.

 반면 정부 지침을 이해한다는 반응도 나왔다. 서울의 한 구청 직은 “지금 상황에서는 문책도 문책이지만 코로나19에 걸리면 일터에서 입장이 엄청 곤란해지는 데다 동선이 공개되기 때문에 정부 방침에 크게 불평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재택근무를 하기가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업무상 “구청은 민원인을 주로 상대하는 업무 특성상 재택근무가 하기 힘들다”고 했다.

 서울시는 이날 특별지침과는 별도로 직원 3분의 1은 재택근무를 하고, 다음 달 3일 실시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이 있는 공무원은 별도 재택근무를 하도록 했다.

“지방의회 행정 사무감사 중인데…“

정부세종청사가 있는 세종시 전경. [중앙포토]

정부세종청사가 있는 세종시 전경. [중앙포토]

충남도와 세종시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정부 지침에 대한 원성이 일었다. 지방의회의 행정 사무감사가 진행 중인 데다 국비 확보를 위해 국회와 정부부처를 쫓아다녀야 하는 여건 때문이다. 충남지역 기초단체 한 공무원은 “10개월째 이어진 코로나19로 인력 1명이 아쉬운 상황인데 그게(복무지침) 가당키나 한 얘기냐, 현장을 모르는 중앙부처의 탁상행정”이라고 말했다.

 충남도는 정부의 지침에 따라 23일부터 본청 근무자를 대상으로 매일 두 차례 건강상태 확인을 의무화했다. 외부인의 사무실 방문을 전면 통제하고 외부인을 만날 경우 지하 1층 대기실을 이용하도록 했다. 출장 역시 금지했다. 일과 이후 사적 모임을 금지하고 대전·세종 등 다른 지역 거주 직원은 귀가 후 외출을 자제하도록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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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임산부, 어린 자녀 둔 고위험군 직원 재택”

 강원도 역시 오는 24일부터 변경된 복무지침 적용에 들어가기로 했다. 18개 시·군에 밀집도를 낮추기 위한 재택근무 지침을 전달하고, 필수 재택근무 직원도 명시했다. 임산부이거나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공직자는 의무적으로 재택을 하도록 한 것이다.

 강원도는 정선처럼 확진자가 한명도 발생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가급적 재택근무'를 하되 현지 상황에 따라 부서장이 판단해 결정하도록 했다. 강원도 관계자는 “민원부서 등은 3분의 1이 재택근무에 들어갈 경우 어려움이 많아 부서장 판단하에 업무에 지장이 생기지 않는 선에서 재택근무를 하도록 권고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현예·최모란·신진호·박진호 기자 hykim@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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