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불황, 일해서 번 돈 17년만에 가장 많이 줄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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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코로나19로 인한 불황 탓에 올해 3분기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이 모두 줄어들었다. 일자리는 줄었고 자영업도 부진했다. 17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한 건물에 임대 안내문이 걸려 있다. [뉴스1]

코로나19로 인한 불황 탓에 올해 3분기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이 모두 줄어들었다. 일자리는 줄었고 자영업도 부진했다. 17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한 건물에 임대 안내문이 걸려 있다. [뉴스1]

일해서 번 돈은 줄고, 정부가 준 돈으로 지갑을 채웠다. 소득 상위권 가구는 더 부자가 됐고 소득 하위권 가구는 더 궁핍해졌다.

통계청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지원금 등 이전소득 역대 최대 #고소득층이 정부 혜택 더 받아 #양극화 작년 3분기보다 심화

통계청이 19일 발표한 ‘2020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530만5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늘었다. 전체 소득은 늘었지만, 일해서 번 돈인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은 각각 1.1%, 1% 줄었다. 특히 근로소득은 2003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후 3분기 기준으로 가장 큰 폭으로 쪼그라들었다.

다시?지출?줄인?가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다시?지출?줄인?가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이 모두 줄어든 배경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있다. 일자리 자체가 줄어든 데다 사업체의 임금 상승률도 둔화했다. 가계 사업소득과 연관이 높은 숙박·음식업, 도소매업 등 서비스 분야 자영업이 부진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반대로 경제활동을 통해 번 돈이 아닌 이전소득은 17.1% 증가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지원금, 근로장려금 등 공적 이전소득이 29.5% 늘어나면서다. 3분기를 기준으로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큰 상승 폭이다. 정부가 4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덕분이다.

근로소득, 3분기?기준?최대폭?감소.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근로소득, 3분기?기준?최대폭?감소.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러나 어려운 계층에게 맞춤형으로 지원금을 주겠다는 지난 8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은 거꾸로 실현됐다. 2차 재난지원금 지급은 고소득층 소득을 늘리는 효과가 컸다. 3분기 공적이전소득이 소득 구간별로 1년 전과 비교해 얼마나 늘었는지 살펴봤더니 소득 최하위 20%인 1분위가 15.8%로 상승률이 가장 낮았다. 소득 2분위(27.5%)·3분위(17.3%)보다도 고소득인 4분위(63.5%)·5분위(40.3%)의 상승 폭이 높게 나타났다.

공적이전소득?증감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공적이전소득?증감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정동명 통계청 사회통계국장은 “초등생 이하의 가족이 있는 가구를 보면 1분위(소득 하위 20%)보다 5분위(상위 20%) 비중이 3배 이상 높다”며 “아동 돌봄지원금 영향으로 공적이전소득 상승 폭에서 4·5분위 비중이 컸다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소득층 가구는 1인 가구나 노령 인구 비중이 높다 보니 아동돌봄 같은 추가 지원금을 덜 받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2차 재난지원금에 포함된 소상공인 지원금도 소득이 아닌 매출 감소를 기준으로 지급했기 때문에 소득 재분배 효과가 떨어졌다. 기존 매출이 높은 자영업자일수록 매출 감소 폭도 커 지원금을 더 많이 받아가는 구조였다.

소득?상위?20%가?하위?20%의?4.88배...불평등?심화.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소득?상위?20%가?하위?20%의?4.88배...불평등?심화.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 때문에 소득 격차도 더 커졌다. 쓰고 저축하고 남은 돈(처분가능소득)을 기준으로 올 3분기 소득 최상위층(5분위)과 최하위층(1분위) 소득 격차는 4.88배였다. 지난해 3분기(4.66배)에 비해 0.22배 더 벌어졌다. 가구가 벌어들인 돈(시장소득)만 따졌을 때 소득 1분위와 5분위의 격차(배율)는 8.24배에 달했다. 정부 지원금 등 공적이전소득·지출까지 더해지며 소득 격차(처분가능소득 기준)가 4.88배로 떨어지긴 했지만, 그 조정 폭(-3.36배)은 2분기(-4.19배)보다 덜했다. 소득재분배 효과가 2차 재난지원금 때문에 상대적으로 줄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 저소득층에게 더 많이 효과적으로 정부 지원금이 갈 수 있도록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계층에 보편 지원하는 게 정치적 이해관계에서는 좋을 수 있지만, 재정 상황 등을 고려하면 취약 계층을 선별 지원하는 게 맞다”면서 “지원 체계를 다시 한번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남준·임성빈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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