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의 건강] 下. 생각만 앞서는 '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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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관계는 무방하다(49.3%), 성관계만 없으면 상관없다(7.9%)'.

배우자 외 남성과의 교제에 대한 여성들의 답변이다. 심지어 '둘 만의 여행도 무방하다'는 답변도 1.7%나 됐다.

중앙일보의 '뛰자! 한국여성'시리즈와 관련, 본지 여론조사팀이 8월 중 6대 도시 성인 여성 7백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다.

생활에서 성적 만족은 중요하며(80.7%), 성관계시 여성이 적극적인 것은 바람직하며(81.6%), 혼전 순결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57.5%)고 응답했다.

개방적이며 적극적으로 변한 한국 여성의 성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앞서 나가는 성적 욕구로부터 몸을 보호할만큼 성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콘돔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성병은?'

남성에겐 상식에 가까운 질문이다. 그러나 '사면발이'라고 정답을 맞춘 여성은 21.1%에 불과했다.50.6%의 여성이 에이즈라고 답했지만 에이즈는 대부분 콘돔으로 예방된다. 사면발이란 음모에 기생하는 이. 털에서 털로 옮기므로 콘돔으로 막지 못한다.

성병이란 측면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불리하다. 에이즈나 임질.매독 등 대부분의 성병은 감염자와의 성 접촉시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잘 걸리며 후유증도 심하게 남는다.

배우자의 외도 등으로 옮기는 파필로마 바이러스도 문제다. 이 바이러스에 장기간 감염된 여성은 자궁경부암에 걸릴 확률이 서너배 이상 증가한다.

피임에 대한 무지도 문제로 드러났다. 본지의 이번 조사에서 전체 여성의 31.1%가 인공유산을 경험했으며 인공유산의 61%가 피임 실패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15~44세 여성의 44%가 인공유산을 한번 이상 경험했다는 199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결과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인공유산율이다.

또한 이번 조사에선 먹는 피임약보다 질외(膣外)사정법으로 피임을 유지하는 여성이 3배 가까이 많았다.

먹는 피임약은 장기간 사용에도 비교적 안전하며 피임효과가 높아 서구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피임법이나 국내에선 알약에 대한 거부감 등 때문에 푸대접받고 있다.

배란 기간을 피해 성 관계를 갖는 주기(週期)법도 한계가 있다. 청담마리산부인과 이유미 원장은 "생리 직후 성관계는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생리 주기가 짧으면서 생리 기간이 길 경우 질 속에 정자가 살아 남아 임신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피임 성공률은 피부에 이식하는 피임장치, 루프라고 불리는 자궁내 장치, 먹는 피임약 등이 높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콘돔과 질외 사정법, 주기법은 성공률이 낮아 인식 전환이 요청된다.

불감증 등 성적 만족을 얻지 못하는 경우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남성의 발기부전 등 성기능 장애는 적극적으로 치료의 대상이 되는 반면 여성의 경우 드러내놓고 병원을 찾는 일은 드물다.

평촌 봄빛병원 김성수 원장은 "여성도 성을 즐길 권리가 있으며 여성의 불감증도 원인에 따라 상담 및 심리치료.약물치료.질 윤활제.수술 등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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