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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집회서 태극기 태웠는데···국기모독죄 무죄 받은 사연

중앙일보

입력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주변의 돌발적인 집회·시위 등을 차단하기 위해 경찰 버스가 빽빽이 주차돼있다. 사진과 기사는 직접 관계 없음.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주변의 돌발적인 집회·시위 등을 차단하기 위해 경찰 버스가 빽빽이 주차돼있다. 사진과 기사는 직접 관계 없음. [연합뉴스]

세월호 집회에 참가했다가 태극기를 불태운 20대 남성이 대법원에서 ‘국기모독죄’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김모씨에 대해 일반교통방해ㆍ집회및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의 점에 대해서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고, 국기모독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원심이 옳다고 결론냈다고 13일 밝혔다.

격분해 태극기 태운 시위자…“대한민국 모욕목적 아니다” 주장

김씨는 2015년 4월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범국민 추모행동' 집회에 참가했다. 이틀 뒤에는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관련 집회에 나갔다. 태극기를 불태운 건 18일에 열린 집회에서였다.

18일 밤 10시쯤 광화문 광장 근처에 있던 김씨는 인근 경찰버스에 끼워져 있던 태극기를 빼내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김씨가 태극기에 불을 붙이자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이를 동영상과 사진으로 촬영했고 김씨는 집시법 및 국기모독죄 혐의까지 적용돼 수사와 재판을 받게 됐다. 당시 김씨에 대해 국기모독죄 등을 물어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법원에서 기각되기도 했다.

김씨는 재판에서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를 태운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폈다. 당시 경찰이 집회 현장을 과잉진압한다고 생각했고 이에 항의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태극기를 불태웠을 뿐이란 주장이다. 1심 재판부는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김씨는 세월호 추모제에 참석하려 했다가 시위대로 합류하게 됐다. 광화문 광장 인근이 전부 경찰 차벽으로 막혀있었다. 김씨는 시위대에 물대포까지 쏘는 경찰의 진압 방식을 봤고, 경찰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위협을 느꼈다고도 했다. 이를 부당한 공권력 행사라고 격분한 김씨는 태극기를 불태웠고 그 뒤 자신의 행동이 뉴스에 보도되자 너무 놀라 당시 입은 옷과 신발을 친구에게 버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태극기를 태우는 사진 및 동영상만으로는 김씨가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틀간 김씨가 참여한 집회에서 교통을 방해한 점, 경찰 버스를 손상하고 해산명령에 불응한 점은 인정할 수 있다며 집시법 등 위반 혐의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김씨가 1심에서 신청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은 기각됐다. 항소심도 1심 판결이 옳다고 봤다.

헌재 “국기모독죄는 합헌”

이와 별도로 김씨는 헌법재판소에도 국기모독죄가 위헌인지 가려달라며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재판관 4(합헌)대 2(일부위헌)대 3(위헌)의 의견으로 국기모독죄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했다. 위헌정족수인 6명을 충족하지 않아 합헌 판단이 난 것이다. 헌재는 이 조항이 명확성 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만약 표현의 자유를 강조해 국기 훼손행위를 금지ㆍ처벌하지 않는다면 국기가 상징하는 국가의 권위와 체면이 훼손되고 국기에 대한 존중 감정이 손상될 것”이라며 “국가의 권위와 체면을 지키고 국민 존중 감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를 형벌로 제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위헌의견을 낸 이석태, 김기영, 이미선 재판관은 “국민이 정치적 의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국기를 훼손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고, 이를 처벌 대상으로 하는 것은 표현의 내용을 규제하는 것으로 엄격하게 허용돼야 한다”고 과도한 제한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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