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활비·원전 수사 압박 속…尹 보란듯 또 '국민 검찰' 꺼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윤석열 검찰총장이 신임 차장검사 대상 강연과 만찬을 위해 9일 오후 충북 진천 법무연수원을 방문, 배성범 법무연수원장과 강연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신임 차장검사 대상 강연과 만찬을 위해 9일 오후 충북 진천 법무연수원을 방문, 배성범 법무연수원장과 강연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수사와 검찰 특수활동비 조사를 둘러싼 외압이 거세지는 가운데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개혁의 방향은 '공정한 검찰'과 '국민의 검찰'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권의 압박에 강하게 맞대응하는 대신 원칙론을 내세우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윤석열 "검찰의 주인은 국민" 

윤 총장은 9일 충북 진천 법무연수원에서 열린 신임 차장검사 대상 강연에서 "국민의 검찰은 검찰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여권은 최근 검찰의 월성 1호기 수사와 관련해 '정치수사'라며 총공세에 나섰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6일 "정치수사이자 검찰권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도 "검찰의 국정 개입 수사 행태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치인 총장이 정부를 공격하고 흔들려고 편파, 과잉수사를 하거나 청와대 압수수색을 수십 회(하는 등) 이런 것들이 상당히 민주적 시스템을 공격, 붕괴시킨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윤 총장의 강연이 예정되자 '작심 발언'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예측이 많았다. 예상과 달리 윤 총장의 강한 발언은 없었다. 대신 검찰개혁의 방향이 '정권'이 아닌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본인의 소신을 재차 피력했다. 불필요한 논란을 더욱 키우지 않겠다는 속내가 읽힌다.

윤 총장은 지난 3일 같은 장소에서 진행된 신임 부장검사 대상 강연에서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그는 지난 강연에서 "검찰 제도는 프랑스혁명 이후에 수립된 공화국의 검찰에서 시작됐다"며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공화국 정신에서 탄생한 것인 만큼 국민의 검찰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이 원하는 진짜 검찰개혁은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를 눈치 보지 않고 공정하게 수사하는 검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검찰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전지검 검사와 수사관들이 6일 오전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등과 관련, 경북 경주시 양북면 한국수력원자력(주) 본사에서 이틀째 압수수색을 하기 위해 들어가고 있다. 지난 5일 실시된 압수수색에는 검사와 수사관 등 30여 명이 기획처 등을 중심으로 압수수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

대전지검 검사와 수사관들이 6일 오전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등과 관련, 경북 경주시 양북면 한국수력원자력(주) 본사에서 이틀째 압수수색을 하기 위해 들어가고 있다. 지난 5일 실시된 압수수색에는 검사와 수사관 등 30여 명이 기획처 등을 중심으로 압수수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

"형사사법 절차에서 공정한 기회 보장하는 것" 

윤 총장은 이날 강연에서 "공정한 검찰은 형사사법 절차에서 당사자 간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는 당사자주의, 공판중심 수사구조, 방어권 철저 보장 등을 포함한다"고 말했다. "공정한 검찰과 국민의 검찰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일선 청에서 차장검사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 갖춰야할 덕목도 짚었다. 윤 총장은 "차장검사는 검찰의 보직 중 가장 힘든 보직으로서 청 운영에 있어 전통적 의미의 어머니처럼 세세하고 꼼꼼하게 행정사무와 소추 사무를 챙기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차장검사는 '참모'로서의 역할과 '지휘관'으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지위로서 상하 간을 완충하는 기능을 담당한다"며 "따라서 설득의 능력이 가장 중요한데 이러한 설득 능력에는 '원칙'과 '인내'가 필수적 요소"라고 조언했다.

검찰의 한 간부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윤 총장이 강하게 맞대응한다면 불필요한 논란만 만들게 돼 원론적인 이야기만 한 것 같다"며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정의롭게 수사하라는 메시지에 윤 총장의 의중이 함축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널A 기자 수사하다 승진한 정진웅 차장은 불참  

전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을 수사하며 한동훈 검사장과 '육탄전'까지 벌인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지난 8월 27일 광주지검 차장검사로 승진했다. 연합뉴스

전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을 수사하며 한동훈 검사장과 '육탄전'까지 벌인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지난 8월 27일 광주지검 차장검사로 승진했다. 연합뉴스

한편 채널A 기자 강요미수 의혹 사건을 수사하다 지난 8월 차장검사로 승진한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는 이날 참석 대상자였지만 불참했다. 정 차장검사는 사건을 수사하면서 한동훈 검사장과 몸싸움을 벌여 독직폭행 혐의로 기소됐다.

한 검찰 관계자는 "여러 이유로 신임 차장·부장 강연 때 불참하기도 한다"며 "검찰 내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잘 나가는 애들은 안 온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강광우·나운채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