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60개국 회의 열겠다며 107억 편성···코로나도 웃을 '예산 뻥튀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2일 내놓은 '2021년도 예산안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 부처 예산안에서 부처별 '예산 부풀리기' 사례가 적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 속 국제 행사 명목으로 예산을 편성하거나, 이용객이 급감한 카지노 수입을 올려 잡는 경우도 있었다. 일러스트 배민호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2일 내놓은 '2021년도 예산안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 부처 예산안에서 부처별 '예산 부풀리기' 사례가 적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 속 국제 행사 명목으로 예산을 편성하거나, 이용객이 급감한 카지노 수입을 올려 잡는 경우도 있었다. 일러스트 배민호

2021년 예산안은 정부 부처의 한해 살림살이를 결정한다. 한 푼이라도 더 따내고 더 쓰기 위한 부처 간 경쟁으로 ‘예산 부풀리기’가 적지 않은데,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정부의 비대면, 여행 자제 권고가 계속되고 있지만 일부 부처는 국제 행사 개최 등을 이유로 예산을 과다 편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2일 내놓은 ‘2021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검토보고’에 따르면 산림청은 ‘세계산림총회’ 추진 예산으로 107억원을 편성했다. 내년 5월 서울에서 개최할 예정으로, 160개국을 초청한다고 했다.

외교부도 비슷했다. 대규모 국제행사인 ‘UN평화유지 장관회의’ 개최에 35억원, 한ㆍ아프리카 포럼에 15억원을 편성했다. 경찰청은 30개국 경찰청장을 모으겠다며 ‘국제경찰청장 회의’에 4억원을,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40개국이 참가하는 ‘APPA(아시아태평양 개인정보 감독기구 협의체) 서울포럼’에 2억 6000만원을 편성했다. 코로나 사태가 지속하면 무늬만 남을 우려가 있는 행사들이다.

수석전문위원은 보고서에서 “이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코로나19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는 행사로 비대면 행사로 전환하거나 연기, 취소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야당 관계자는 “행사가 축소거나 취소될 가능성이 높아도 예산은 지키고 보자는 전형적인 꼼수”라고 비판했다.

부처별 ‘2021년 예산 부풀리기’ 사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부처별 ‘2021년 예산 부풀리기’ 사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문화체육관광부는 카지노 납입금 수입을 1341억원이나 잡아놨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11월 현재 국내 카지노 다수가 휴장하거나, 소규모 부분 개장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화체육관광부는 카지노 납입금 수입을 1341억원이나 잡아놨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11월 현재 국내 카지노 다수가 휴장하거나, 소규모 부분 개장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발생 가능성이 없는 수입을 예산에 편성한 사례도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카지노 납입금 수입예산으로 1341억원을 잡아놨다. 국내 카지노 사업장은 매출액의 약 10%를 문체부에 납입하는데, 코로나 사태로 대부분 카지노가 장기 휴장에 들어갔다. 문체부는 “8월부터 카지노 휴업이 회복될 것을 가정해 예산을 편성했다”는 입장이지만, 11월 현재에도 많은 사업장이 여전히 휴장 혹은 부분 개장 상태라 납입금은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이외에도 문체부는 출국자들이 내는 공과금인 ‘출국납부금’ 수입 예산을 4006억원 편성했는데, 코로나로 출국자들이 확 줄어든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석전문위원은 “역대 최대치였던 2019년 출국납부금 결산금액으로 2021년도 안을 낸 것”이라며 “게다가 문체부는 앞서 2020년도 출국납부금을 22.9%인 919억원으로 추정했다”고 꼬집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1년 예산안에 '출국납부금' 수입 예산을 4006억원 편성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출국자가 급감하면서 문체부는 올해 출국납부금을 919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1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입국자들이 자가격리 수칙을 안내받는 모습. 뉴스1

문화체육관광부는 2021년 예산안에 '출국납부금' 수입 예산을 4006억원 편성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출국자가 급감하면서 문체부는 올해 출국납부금을 919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1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입국자들이 자가격리 수칙을 안내받는 모습. 뉴스1

국가보훈처는 ‘88골프장’ 매각대금 수입으로 1227억원을 잡아놨다. 보훈처가 2008년 이래 매각을 시도했지만 한 번도 팔리지 않은 골프장이다. 인수자가 없는 데다가, 상이군경회 등 일부 보훈단체들이 “국가유공자들에게 갈 보상금으로 건립된 골프장을 민간에 넘길 수 없다”고 반대하고 있어서다.

이처럼 각 부처가 지출 예산을 늘려잡는 건 ‘예산 부풀리기’로 여유 자금을 늘리기 위해서다. 수입 예산을 늘려잡는 건 예상 수입을 크게 부풀리면 예상 세출(부처 지출) 규모도 덩달아 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수입이 발생하지 않아도 불어난 세출 규모에 맞게 자금을 더 지출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만약 일반 기업에서 이런 식으로 예산을 짜면 당장 퇴출감”이라고 꼬집었다. 국회 관계자는 “뻥튀기 예산으로 합리적인 추계가 불가능해지면 효율적인 예산 집행은 물론 재정 건전성에도 독이 될 수 있다”며 “국회 예산 심사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예산을 반드시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