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시간·장소·상황, 진술 모순"…'미투' 교수 항소심서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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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예방치료센터 등 72개 여성·시민단체는 28일 전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판결의 문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아닌 판사의 성 인지 감수성"이라며 A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 성폭력예방치료센터]

성폭력예방치료센터 등 72개 여성·시민단체는 28일 전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판결의 문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아닌 판사의 성 인지 감수성"이라며 A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 성폭력예방치료센터]

동료 교수와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전북의 한 사립대학교 교수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동료·제자 추행 혐의…1심선 징역 1년 선고 #항소심 "피해자 진술 신빙성 부족" 원심 파기 #여성·시민단체 "판사 성인지 감수성이 문제"

 전주지법 형사1부(부장 강동원)는 28일 강제추행과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로 기소된 전북 모 사립대 A교수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종합적으로 볼 때 피해자들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에게 유죄를 내리기 어렵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A교수는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승용차와 연구실 등에서 동료 교수와 학생 등 2명을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성범죄를 유죄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의 진술에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신빙성이 있어야 한다"며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들의 진술은 사건 발생 시간과 장소, 상황 등에서 모순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두 피해자 중 한 피해자는 본 법정에서 사건이 발생한 시점·장소 등을 1심과 다르게 진술했다"며 "사건 발생 당시 주변에 많은 이들이 있었으나 추행 장면을 목격한 이들이 없고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 들은 사람도 없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는 피고인이 추행 행위를 멈추게 된 계기를 주변 사람의 등장이라고 설명하지만, 이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진술도 번복했다"며 "또 다른 피해자 역시 피고인과 함께 한 사건 당일의 동선을 객관적 증거와 다르게 말하고 있다"고 했다.

 앞서 A교수는 지난 2월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가 항소심 과정에서 보석으로 풀려났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해 자신이 연출하는 연극의 배우나 스태프로 참여하는 학생과 교수를 상대로 범행했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피해자들이 자신을 악의적인 의도로 음해한다고 주장하면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도 받지 못해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항소심 판결 후 A교수의 파면을 주장해 온 성폭력예방치료센터 등 72개 여성·시민단체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 단체는 이날 전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판결의 문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아닌 판사의 성 인지 감수성"이라며 "수많은 피해를 고발하고 증명하려는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면 오늘과 같은 결과는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번 사건이 단순 추행이 아니라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상고가 이뤄지면) 대법원은 사건을 파기 환송해 다시 심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A교수 사건은 제자들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3월 초 결백을 주장하며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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