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첫 국내파 KIST 원장 "R&D 성공률 98% 자랑 아니다…'도전적 실패' 장려하겠다"

중앙일보

입력

윤석진 KIST 원장이 27일 KIST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사진 KIST]

윤석진 KIST 원장이 27일 KIST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사진 KIST]

국가 연구개발(R&D) 과제 성공률 98%는 자랑이 아니라 오명이다. ‘도전적 실패’를 성과로 인정하고 포상하겠다. 임기 중 미지의 영역, 답이 없는 연구, 세계 최초 연구를 시도해 보겠다.

윤석진(61)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은 27일 서울 홍릉 본원에서 열린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위와 같은 포부를 밝혔다. 도전적 연구에 뛰어드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 연구의 수월성을 향상하겠다는 뜻이다. 한국의 국가 R&D 과제 수는 지난해 기준 6만개 이상으로, 성공률이 98%에 달한다. 그러나 이 성과가 기술 혁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고질병으로 꼽힌다. 이 수치는 연구자들이 정부가 보장하는 단기 과제에만 집중하고 스스로 도전을 주저한다는 의미도 되기 때문이다. 윤 원장의 목표는 이런 문화를 쇄신하고 성과를 달성하지 못해도 의미 있는 시도를 했다면 상과 격려를 받는 연구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일명 ‘그랜드 챌린지’(GRaND Challenge)다.

최초 비(比) 서울대, 최초 국내파 원장 

지난 7월 임기를 시작한 윤 원장은 연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ㆍ박사 학위를 받은 ‘국내파’다. 1988년 KIST에 입사한 뒤 연구기획조정본부장ㆍ융합연구정책센터장ㆍ부원장 등을 두루 거쳤다. 연구 실적과 행정 경험을 두루 갖춘 인물로 꼽힌다. 임명 당시 첫 비(非)서울대, 첫 국내파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1966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54년 만에 국내에서 박사까지 마친 ‘토종’ 원장이 나온 것이다. 이전 원장들은 모두 미국 등 해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윤 원장은 이에 대해 “국내 과학ㆍ기술에 대한 위상이 높아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최근 국내 박사 중 일부는 연구 실적에 있어 해외 대학 출신 박사들을 앞서고 있다는 게 윤 원장의 설명이다. 윤 원장은 “KIST 연구원 선발 때 정량적 성과로만 평가하면 국내파가 훨씬 점수가 높다”며 “이대로 하면 오히려 국내파가 70~80% 정도를 차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토종 박사들이 연구 실적은 뛰어나지만, 거대한 질문이나 미래에 대한 통찰은 약한 편”이라며 “개인적으로 보면 국내파와 해외파가 절반씩 구성되는 게 이상적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전경. 서울 홍릉에 있다. [사진 KIST]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전경. 서울 홍릉에 있다. [사진 KIST]

"줄 세우기 하지 않겠다"

윤 원장은 국내에서 도전적 연구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한 배경에 정량적 ‘줄 세우기’가 있다고 봤다. 논문이나 특허 건수 위주의 정량적 성과를 중요하게 여기며 발전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 같은 문화는 고질적인 병폐가 됐다고 윤 원장은 평가했다. 그랜드 챌린지와 같은 제도를 만든 것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또한 실험실에서 이전된 기술의 산업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과 함께 연구하는 ‘링킹랩(Linking Lab)’도 운영하기로 했다. 향후 1년 이내에 링킹랩 5곳을 만들 계획이다. 이날 참석한 석현광 연구기획조정본부장은 “현재 대기업 1곳과 중소기업 3곳이 참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윤 원장은 “기초원천 기술에서 산업화에 이르기까지 총 10단계로 나눠봤을 때 기존에는 출연연과 기업이 4~5단계에서 정체돼 이른바 ‘데스밸리(death valley)’를 넘지 못했다면, 링킹랩을 통해 8~9단계로 바로 갈 수 있는 협력 모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윤석진 KIST 원장

1959년생
1992년 연세대학교 전기공학 박사 졸업
1995~1996년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박사 후 연구원
1988 KIST 입사

2003~2009 KIST 박막재료연구센터장
2010~2011 KIST 재료·소자본부장
2011~2012 KIST 미래융합기술연구본부장
2012~2014 KIST 연구기획조정본부장
2014~2017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융합연구본부장
2017~ 2020.07 KIST 부원장
2020.07~현재 25대 KIST 원장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