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그럴 자격이 있어" 나달에게 전한 페더러 한 마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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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큰 라이벌, 20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을 축하해. 넌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

라파엘 나달이 12일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하면서 로저 페더러와 함께 20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 기록을 세웠다. [사진 ATP 소셜미디어]

라파엘 나달이 12일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하면서 로저 페더러와 함께 20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 기록을 세웠다. [사진 ATP 소셜미디어]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39·스위스·세계랭킹 4위)는 12일(한국시각) 프랑스오픈 테니스 대회 남자단식 결승이 끝나자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이번 대회에서 13번째 우승을 달성한 라파엘 나달(34·스페인·세계랭킹 2위)에게 전하는 말이었다. 나달은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에서 20차례 우승 기록도 세웠다. 이 기록을 가장 먼저 이룬 남자 선수는 페더러다. 나달은 우승 인터뷰에서 "페더러와 오랜 시간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면서 같은 시대에 같은 기록(20회 우승)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영광"이라고 말했다.

나달과 페더러는 '세기의 라이벌'로 불린다. 2003년 윔블던에서 메이저 대회 첫 우승을 달성한 페더러는 한동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혔다. 1980년대 테니스 스타 존 매켄로는 지난 2006년 "페더러는 눈감고도 투어 선수의 절반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그런 페더러에게 강력한 라이벌인 나달이 2005년 등장했다. 나달은 그해 프랑스오픈에서 메이저 대회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06년과 2007년 프랑스오픈 결승에서는 연달아 페더러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이후 페더러와 나달은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더욱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 됐다. 단색 톤의 셔츠와 반바지를 주로 입은 페더러는 '신사'라는 수식어가 어울렸다. 플레이도 차분하고 정교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반면 나달은 목을 덮는 긴 머리칼을 휘날렸다. 울퉁불퉁한 팔 근육을 훤히 드러내는 화려한 색의 민소매 셔츠를 입고 있으면 '야생마'처럼 보였다. 나달은 끈질긴 스트로크와 허를 찌르는 플레이를 선보였다.

2019년 9월 레이버컵에 출전한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오른쪽). [사진 레이버컵 SNS]

2019년 9월 레이버컵에 출전한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오른쪽). [사진 레이버컵 SNS]

이토록 다른 모습의 페더러와 나달의 대결은 테니스 팬들을 설레게 했지만, 둘의 압박감은 점점 커졌다. 불만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 페더러가 "나달과 상대 전적에서 ‘압도’한다는 표현보다 ‘좋았다’ 정도로 말해 달라"고 했다. 나달은 "페더러의 기록에 집착하고 싶지 않다"면서 부담감을 털어내려고 노력했다.

그랬던 페더러와 나달은 30대가 되면서 서로를 잘 이해하는 동반자가 됐다. 둘 다 잦은 부상으로 공백기가 길어지고, 은퇴설이 흘러나오면서 마음을 나누는 라이벌이 된 것이다. 페더러는 "경쟁하고, 세계 1위에 오르고, 우승하는 것보다 오래 테니스를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나달도 "우승보다 오래 코트에서 뛰는 것을 생각한다. 페더러를 보면 나도 더 오래 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페더러에겐 나달, 나달에겐 페더러가 있었기에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메이저 대회에서 20회나 우승하는 남자 선수 두 명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위대한 기록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페더러는 "우리는 서로가 있어서 더 나은 선수가 될 수 있었다. 20번째 우승이 앞으로 우리 둘의 선수 여정에 소중한 한 걸음이 될 것"이라고 했다. 페더러와 나달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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