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자산운용 사태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김봉현(46·구속)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8일 법정에서 “지난해 7월 이강세(58) 스타모빌리티 대표가 강기정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전달하겠다고 해 5000만원을 쇼핑백에 넣어줬다”고 증언했다. 라임 사태 이후 청와대 고위 인사에 대한 구체적 로비 증언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봉현 전 회장 이미 남부지검에 “5000만원 전달” 진술
통상 김 전 회장처럼 구속된 사람은 검찰에서 먼저 조사를 받고 진술을 하게 된다. 법정 증언은 그 다음이다.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 전 회장은 지난 4월 구속된 뒤 서울남부지검 수사팀에도 이런 내용을 진술했지만 대검찰청에는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김 전 회장의 법정 증언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뒤 해당 발언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 인사의 금품 수수 관련 진술이 나왔음에도 대검에 보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윤석열 "진술 나왔는데 수사 안 된 이유 파악하라"
윤 총장은 해당 발언을 뒤늦게 보고받고, 김 전 회장이 검찰 단계에서 진술했다면 왜 수사가 안 됐는지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한 검찰 간부는 “조사가 시작된 상황에서 진술이 나왔는데 이를 누락했으면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범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다만 김 전 회장이 수사팀과 사전 면담에서 이를 진술했다면 피의자 신문조서(피신조서)에 포함하지 않고 면담수사보고로 기록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해당 발언을 듣고도 추가 수사를 하지 않은 이유로 감찰이 이뤄질 수 있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는 지난 8월 김 전 회장을 향군상조회 자산 횡령 혐의로 기소했다.
남부지검 수사팀 지휘했던 송삼현 지검장 지난 7월 사의
라임 수사를 이끌었던 송삼현 서울남부지검장은 지난 7월 사의를 표하고 검찰 조직을 떠났다. 사의 당시에도 검찰 내에서 송 전 지검장이 라임 수사로 청와대·여권과 갈등을 겪었다는 말이 나왔다. 다른 검찰 간부는 “지난해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이후 여권에서 검찰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는데 왜 그랬는지 이제야 퍼즐이 맞춰진다”라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8일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부장 이환승) 심리로 열린 이 대표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강 전 수석에 대한 로비 시도 정황을 자세히 증언했다. 그는 “지난해 7월 말 이 대표가 강 수석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며 “이 대표를 보자고 해 집에 있던 돈 5만원권, 5000만원을 쇼핑백에 담아 넘겨줬다”고 증언했다. 김 전 회장은 또 “이 대표가 (강기정) 수석이란 분하고 고향 지인이고 가깝게 지낸 것을 알고 있었다”며 “연락을 받고 청와대로 들어간다고 해서 전달됐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 전 수석의 청와대 재임 기간은 지난해 1월부터 지난 8월까지다. 김 전 회장은 “(이 대표가) 금품을 전달했다고 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네. 인사하고 나왔다고 했다”며 ‘그렇다’는 취지로 답했다.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도 언급됐다. 김 전 회장은 “2019년 7월 27일 저녁 OOOOOO 호텔 커피숍에서 이 대표를 만나서 5000만원을 쇼핑백에 줬느냐”는 검찰 측 질문에 대해서 김 전 회장은 “이 대표 집이 잠실인데 (근처에서) 보자고 해 저녁 무렵에 차를 타고 갔다”고 답했다.
5000만원 전달의 구체적 전달 증거를 묻는 검사의 질문에 대해서도 김 전 회장은 “호텔 CCTV가 있다면 다 찍혀 있을 것”이라는 취지로 답했다. 김 전 회장은 5000만원에 대해 “착수금이었느냐”는 검찰 측 질문에 대해서도 “네”라고 말하며 동의했다.
“라임 사태 이전에 이 대표를 통해서 검찰 수사에 청탁을 시도한 적 있느냐”는 검찰 측 질문에 대해 김 전 회장은 “네”라고 답하며 로비가 광범위하게 이뤄졌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돈을 전달하는 방식을 묻는 검사의 질문에 “이 대표가 결정했고 본인은 그 결정에 따랐다”고 진술했다.
김봉현 "강 전 수석이 김상조에게 연락했다더라"
김 전 회장은 “이후 이 대표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면서 “수석이란 분이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직접 전화해 화내듯이 ‘(라임이) 억울한 면이 많은 모양’이라고 본인 앞에서 강하게 말했다고 전해 들었다”고 증언했다. 김 전 회장은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과 함께 5개월 동안의 도피 생활을 했지만 지난 4월 서울 성북구의 한 빌라에서 검거됐다.
이강세 "강 전 수석 만났지만 돈 전달 안 해"
광주 MBC 사장 출신으로 라임과 정치권의 연결 고리라는 의혹을 받는 이 대표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증거은닉교사·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지난 7월 구속기소됐다. 이 대표 측은 스타모빌리티 업무를 위해 강 전 수석을 만난 적은 있지만, 김 회장에게 돈을 받아 전달한 적은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강기정 “관련된 금품수수 내용은 완전한 사기”
강 전 수석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전 회장의 진술 중 나와 관련된 금품수수 내용은 완전한 사기”라며 “민·형사상 법적 대응을 취하겠다”고 반발했다. 그는 이어 “재판에서 진위도 밝혀지지 않은 한 사람의 주장에 허구의 내용을 첨가해 보도한 모든 언론에 책임을 묻겠다”고 덧붙였다.
김민상‧정유진‧이가람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