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찰도 반대한 공수처법 개악 시도 중단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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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찰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공수처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다. 검찰과 대법원에 이어 친정부 성향의 경찰마저 법의 개악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은 “개정안의 전체 취지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개정안에 문제가 있다는 뜻을 거둬들이진 않았다.

야당 비토권 무력화, 공룡 조직 가능 #검찰 문제점 그대로 넘겨받은 옥상옥

경찰이 문제를 제기한 부분은 공수처장의 수사 협조 요청에 의무적으로 응해야 하는 조항과 검찰 파견 수사 인력을 공수처 정원에서 빼자는 내용, 고위 경찰 범죄는 무조건 공수처로 넘기라는 조항이다. 이미 공수처는 고위 공무원 범죄에 대해 독점적 수사 지위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공수처장의 수사 협조 요청에 반드시 응해야 한다면 공수처가 상급기관이 되고, 협조 요청은 사실상 지시가 된다. 또 파견 인력을 정원에서 빼면 마음대로 조직을 늘릴 수 있는 법적 토대가 생긴다. 권한도 막강한데 덩치까지 커지는 공룡 조직이 될 수도 있다.

경찰은 한 발 뺐지만 개정안은 훨씬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공수처장 추천위원 7명 중 4명을 여야가 2명씩 추천토록 한 현행 조항을 여야 구분 없이 ‘국회 추천 4명’으로 바꾸는 게 핵심이다. 또 추천위원 7명 중 6명의 동의로 후보 2명을 뽑는 방식에서 5명 동의로 완화했다. 야당이 반대해도 여당 단독으로 후보를 추천하겠다는 의미다. 공수처의 기소 대상 확대,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 정원 확대, 자격 완화도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공수처법은 지난 국회에서 여당이 패스트 트랙 조항까지 이용해 힘으로 밀어붙여 탄생했다. 여당은 법 시행일인 7월 15일까지 꼭 공수처를 출범시키겠다고 별렀다. 그러나 처장 후보 추천위원을 야당이 추천하지 않아 계획은 무산됐다. 야당은 법에 위헌 소지가 있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낸 만큼 결과를 기다리자는 입장이다.

여당이 시행 석 달도 안 된 법을 바꾸겠다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연내에 공수처를 출범시키기 위해 야당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임을 다 안다. 어제 여당 소속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한 술 더 떠 10월 중 상임위 통과를 언급했다.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이젠 어떤 비판과 지적도 듣지 않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공수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권력에 아부하고 반대파를 탄압하는 데 기여해 온 검찰의 문제점을 개혁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지금대로 가면 과거 검찰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남긴 옥상옥을 만들게 된다. 개정안은 문제점을 더 확대했다. 정말 인권과 정의를 보호하는 수사기관을 만들겠다면 개악 시도를 멈추고 야당과 함께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아 공수처장을 뽑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