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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은 공간에 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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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어쩌면 우리는 ‘습관이 몸에 배도록 노력하라’는 가르침의 희생양으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습관이 몸에 배다’라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습관에 관한 심각한 오해에서 비롯된 말이다.

코로나로 인해 실종된 습관 #습관은 초인적 의지가 아니라 #일정한 시간과 공간의 산물

공부하는 습관이 몸에 밴 학생을 상상해보자. 버스나 지하철, 심지어 식당에서조차 손에서 책을 떼지 않는 학생이 머리에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소수를 제외한 보통의 존재들은 도서관에서는 공부에 집중해도 버스에서는 스마트폰을 보거나 잠을 잔다. 조용한 집에서는 집중이 안 되는데 오히려 시끄러운 카페에서는 공부가 잘되는 묘한 존재가 바로 우리다. 집에서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공부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게 아니라, ‘집에서 공부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이다.

흔히 우리는 습관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맥락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착각한다. 습관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반복하는 행위가 아니다.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에 반복하는 행위가 습관이다. 습관은 철저하게 시간과 공간이라는 맥락의 지배를 받는다.

공부하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이란, 공부를 위한 나만의 시간과 장소가 있는 사람이다. 공부하는 습관을 갖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간절한 소원을 이뤄드리기 위해 자기 자신을 방에 감금한 채 자괴감에 몸부림치는 존재가 아니라, 일정한 시간에 동네 카페나 독서실로 무심하게 떠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자녀에게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부모란, 본보기가 되기 위해 아이 옆에서 억지로 책을 읽으며 조는 존재가 아니라, 아이가 공부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장소로 유도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공간은 특정 행동을 자동적으로 유도하는 자동항법장치와 같다. 술집에만 가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있다. 골프장에만 가면 시가를 피우는 사람들도 있다. 평소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묘하게 그곳에만 가면 담배 생각이 난다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망이 언제 어디서 생겨나는지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담배를 판매하는 장소에 갔을 때 흡연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욕망도 공간의 산물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부도덕한 행위를 한 사람을 두고 주변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반응이다. 그들의 놀람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평소에 그 사람이 어울렸던 사람들과 그 공간은 일탈을 유도하는 맥락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의실에서, 엘리베이터에서,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그의 행동은 늘 신사답고 점잖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도 묘하게 특정 장소에만 가면, 거기에 특정 사람까지 더해지면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자신을 취약하게 만드는 공간과 사람의 은밀한 조합이 있기 마련이다. 행동을 조심하고 싶다면 결심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그 장소’라는 최악의 조합을 피해야 한다. 우리의 행동이란 ‘If~then’(~하면 ~한다)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개과천선했네!’ 선한 모습으로 180도 바뀐 사람을 볼 때 우리가 보이는 반응이다. 물론 결정적 회심의 계기가 있었을 수도 있다. 신을 만나는 것과 같은 신비 체험을 했거나 불치병 선고를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극적인 사건보다는 ‘어떤 사람과 어떤 장소’의 조합으로 인해 새로운 습관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환경운동이나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그 계기를 물으면 가장 흔한 대답은 ‘권유를 받았다’이다. 주변 사람이 함께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이지, 인류애가 갑자기 생겨서가 아니다. 누군가의 권유로 어떤 장소에 일정하게 가다 보면, 어느 순간 환경주의자도 되고 자원봉사자도 되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된 지난 2주 동안 한국인의 행복도가 급격하게 하락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가장 큰 하락이다. 행복도 하락의 원인은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 탓도 있겠지만, 습관의 두 기둥인 공간과 시간이 일순간 사라졌기 때문이다.

카페가 사라졌고 체육관이 사라졌으며, 친구들과의 저녁이 사라졌다. 한마디로 습관이 사라진 것이다.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장소로 가던 행위가 사라지자 우리 마음이 힘들었던 것이다.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볼 좋은 계절이 왔다. 이제껏 새로운 결심만 해왔다면 새로운 공간을 모색해볼 차례다. 자신을 변화시켜줄 사람과 공간의 최적의 조합을 만들어 볼 시간이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