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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음악·철학을 담은 풍경…‘자유·독립 감각’ 살아있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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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4호 26면

[미학 산책] 조르조네 ‘전원에서의 연주회’

‘전원에서의 연주회’(1509)는 원래 조르조네가 그린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금은 티치안의 것으로 간주된다. 이 그림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1863)에 영향을 줬다. 캔버스에 유화, 110x138㎝. [루브르박물관]

‘전원에서의 연주회’(1509)는 원래 조르조네가 그린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금은 티치안의 것으로 간주된다. 이 그림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1863)에 영향을 줬다. 캔버스에 유화, 110x138㎝. [루브르박물관]

조르조네 그림의 전원시적 특성을 말할 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 ‘전원에서의 연주회’(1509)다. 이 작품은 원래 그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현대에 들어와 티치안의 것으로 간주된다. 결정적인 이유는 여성 님프(요정)의 몸이 지나치게 건장하고 튼실하기 때문이다. 마네(E Manet)가 저 논란 많은 ‘풀밭 위의 점심’(1863)을 그린 것도 이 그림을 본 후였다.

‘그려진 전원시’ 같은 목가적 서정 #모든 게 어우러져 질서·조화 생겨 #‘세 철학자’는 성스러운 대화 느낌 #고대·중세·르네상스 융합 정신도

그림 중앙에는 세 명의 젊은 사람들이 풀밭에 앉아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두 사람은 남자고 한 사람은 여자다. 그런데 두 남자의 옷차림은 서로 다르다. 류트를 연주하는 왼편 청년은 화려하고 풍성한 옷차림에 멋진 모자까지 쓰고 있다. 그에 반해 그의 왼편에 앉은, 그러니까 관람자 쪽에서 보면, 오른쪽의 젊은이는 소박한 옷차림이다. 맨발의 그는 목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 류트의 선율에 귀 기울이는 듯 고개를 돌린 채 연주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이 두 남자를 마주한 채 바라보는 여인은 피리를 든 요정이다. 왼편의 또 다른 여자는 유리병에 담긴 물을 대리석 식수대에 붓고 있다. 그런데 두 여인은 모두 옷을 벗고 있다. 옷가지가 있지만, 앉은 여자에게는 엉덩이 아래 깔려 있고, 선 여자에게서는 허리쯤에서 흘러내리고 있다.

이 네 사람으로부터 오른쪽으로 좀 떨어진 곳에 한 목동이 여러 마리의 양과 놀고 있다. 그리고 이들 너머 저 멀리 드넓은 풍경이 펼쳐져 있다. 사람도 풍경도, 나무도 음악도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어울리는 것이다.

튼실한 요정 몸? 티치안 그림일 수도

‘전원의 음악회’는 흔히 ‘시와 음악의 알레고리’로 해석된다. 어떻든 우리는 이 그림에서 목가적 풍경을 느낄 수 있다. 베르길리우스의 ‘목가’는 그 당시 큰 인기를 누렸고, 그래서 많은 시인은 그의 목가적인 시를 모방했다. 화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고, 말과 음악이 교류하듯이, 인간과 자연, 생명과 풍경이 상응하는 모습을 본다. 이 어우러짐은 ‘시적’이다. 이런 시적 성격은, 음악의 선율도 아무러한 소리의 혼합이 아니라, 소리와 소리의 화음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음악적’ 상태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시와 음악은 깊은 의미에서 서로 통한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그려진 시’가 된다. ‘전원에서의 음악회’는 ‘그려진 서정’이고, ‘그려진 전원시’다. 이 풍경의 시는, 대상이 시든 음악이든, 남자든 여자든, 관련되는 모든 대립적인 것을 하나로 어우러지게 만든다. 그리하여 화음의 질서가 생겨나고, 세상의 조화가 생겨난다.

조르조네의 ‘세 철학자’. 세 남성은 서구 문명의 고대와 중세 그리고 르네상스를 상징한다. 캔버스에 유화, 125.5x146.2㎝. [빈 예술사박물관]

조르조네의 ‘세 철학자’. 세 남성은 서구 문명의 고대와 중세 그리고 르네상스를 상징한다. 캔버스에 유화, 125.5x146.2㎝. [빈 예술사박물관]

조르조네적 분위기는 ‘세 철학자’라는 그림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이 그림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왼편에는 큰 동굴이 시커멓게 있고, 오른편에는 나무숲이 서 있다. 그림 중앙에는 두세 그루 나무가 서 있고, 이들 옆으로 들녘 풍경이 펼쳐진다. 이 들녘에는 마을이 있고, 그 너머에는 구릉과 산이 겹겹이 놓여 있다. 세 철학자는 오른편 숲가에 자리한다. 그 가운데 청년 하나가 앉아 있다. 그는 동굴을 바라보며 컴퍼스로 뭔가를 측정하는 듯이 보인다. 중앙에 선 사람은 중년의 남자로 보이고, 오른편 구석에 선 이는 노년의 남자다. 그는 아마도 그리스 철학자일 것이고, 중년의 남자는 머리에 둘러쓴 터번으로 보아 아랍의 철학자일 것이다.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이른바 ‘사크라 콘베르사치오네(sacra con-versazione)’에서처럼, ‘성스런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사크라 콘베르사치오네라는 말은 흔히 성자들 사이에 자리한 마리아와 그 아이를 묘사한 그림을 일컫는 용어이지만, 이 장르가 생겨난 것에도 성스런 면이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때 발전한 이 장르는 그 이전의 엄격하고 위계화된 구성과는 대립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성스런 대화’의 그림에서 인물들은 서로 대화하며 상호작용하는 듯한 친숙한 분위기를 보여 준다. ‘세 철학자’에서 오른편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도, 그것이 진리를 향해 있는 것이니만큼, 성스럽고 고귀한 것이지 않을 수 없다. 진리추구의 모든 노력은 그 자체로 성스럽다. 이 장면은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와 관련하여 얘기되기도 하고, 예수 탄생을 축하하러 온 세 동방박사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20세기에 와서 반박됐다. 대신 서구 지식의 전수경로―말하자면 고대 그리스의 고전이 서유럽에 곧바로 전수된 것이 아니라, 8~9세기 아랍의 광범위하고도 체계적인 번역을 통해 수용됐고, 이것이 12세기부터 유럽 지식인에 의해 재번역되면서 15세기에 이르러 르네상스가 일어난 과정을 묘사한 것으로 얘기된다. 그렇다면 세 철학자는 서구 문명의 세 시기―고대와 중세 그리고 르네상스를 상징한다.

놀라운 것은 이 그림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그것이 사람이든 나무든, 잎사귀든 돌이든, 살갗이든 옷감이든, 손에 만져질 듯이 뚜렷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부드럽고 온화하다.

조르조네는, 앞서 적었듯이, 사물의 경계를 최대한으로 지우고자 했다. 이때 사물의 질서는 훼손되는 것이 아니라 보존된다. 이렇게 보존되는 질서는 서로 밀치거나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껴안는다.

나는 조르조네의 그림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에서 어떤 ‘가라앉는 뉘앙스’를 느낀다. 이러한 뉘앙스는 색채적으로 보색효과 때문일 것이고, 감정적으로는 ‘절제’의 표현일 것이다. 그것이 사랑의 질서라면, 그 사랑은 아마도 오래가는 사랑일 것이다. 조르조네의 전원시적 회화는 오래가는 사랑을 담고 있다.

조르조네가 활동했던 1510년 무렵 베네치아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 도시국가는 이런저런 전쟁과 수시로 일어나는 화재 그리고 전염병으로 상당히 파괴돼 있었다. 그러면서도 ‘르네상스적 이상’이라는 거대한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전환은 중세예술의 종교적 상징세계로부터 좀 더 생생하고 경험적이며 사실적인 세계로의 변화였다. 이런 변화의 끝에 저 놀라운 ‘휴머니즘’ 이념이 자리한다. 조르조네는 바로 이 새로운 세대의 대표주자였다.

종교적 상징서 사실적 세계로 변화

이렇게 이어진 유산의 핵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조르조네 회화의 혁명적 성격은 어디에 있을까? 존-폴 스토나드(J-P Stonard)는 그 유산이 “자유와 독립의 감각”에 있다고 보았다. 나는 그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조르조네를 무엇보다도 ‘시적 화가’―화가시인으로 보고 싶다. 아니면 ‘음악적 화가’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그는 시와 음악과 철학을 목가적 풍경으로 통합한 화가다. 마치 ‘세 철학자’에서 고대 그리스의 이성이 아랍의 지식과 연결되면서 르네상스의 과학으로 이어지듯이, 회화 속에서 시와 음악은 만난다. 조르조네주의란 이 세 다른 층위의 만남, 그 융합의 정신을 뜻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깊은 의미의 사크라 콘베르사치오네―‘성스런 대화’일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일까? 조르조네의 그림들을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보고 음미하며 즐기고 생각하는 호사를 누리는 일이다. 자유와 독립을 향한 그의 시적 정신―조르조네주의는 아직 살아 있다. 아직도 살아 숨 쉬며 그것은 우리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그림을 보고 향유하면서 ‘우리 자신의 현존을 들어 올리는’ 일, 이런 지양적 체험 속에서 삶과 그 테두리를 새로 경험하는 일이다. 새롭게 그리고 다르게 현실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예술은 왜 있는가? 조르조네주의여, 여기 이곳에 살아 있으라!

문광훈 충북대 독일언어문화학과 교수
충북대 독일언어문화학과 교수. 고려대에서 독문학을 공부한 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독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수영론, 김우창론, 페터 바이스론, 발터 벤야민론 등 한국문학과 독일문학, 예술과 미학과 문화에 대해 20권 정도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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