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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 ‘집콕’, 요양원 면회 금지…취약층에게 더 가혹한 코로나

중앙일보

입력

1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상록보육원에서 원생 6명과 교사 2명이 돗자리를 깔고 간식을 먹고 있다. 이우림 기자.

1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상록보육원에서 원생 6명과 교사 2명이 돗자리를 깔고 간식을 먹고 있다. 이우림 기자.

11일 오후 2시 서울 관악구 상록보육원. 출입문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 아이들 6명과 교사 2명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있었다. 킥보드를 타고 놀던 아이들은 돗자리 주변만 맴돌 뿐 출입문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기자가 밖에서 서성거리자 아이들이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보육교사는 “아이들이 나가 놀지 못해 답답해해서 잠깐 밖에서 간식을 먹고 있었다”고 말했다.

6개월 '집콕'…보육원이 학교로 변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 세가 이어지자 보육원이나 요양시설, 노인복지시설 등에 머무는 사회 취약계층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부청하 상록보육원 원장은 “여기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63명인데 학교에 나가는 고3 아이들을 제외하면 모두 6개월 넘도록 외부에 나가지 못했다. 한창 뛰어놀 나이인데 정말 답답해한다”고 토로했다.

서울 관악구 상록보육원에서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모습. [상록보육원]

서울 관악구 상록보육원에서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모습. [상록보육원]

보육원은 오전 9시 30분이 되면 학교로 변신한다. 초등학교 1학년 원생 10명과 2학년 원생 7명은 인원이 많아 센터에 방을 따로 만들어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부 원장은 “다행히 노트북은 아이들 숫자만큼 확보했다”고 말했다. 다만 “한 달에 자원봉사자가 150명 정도 왔는데 지금은 전혀 오지 못하고 있다. 교사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먹이고, 공부를 가르치느라 힘들어 한다”며 “종일 실내에 있느라 나가는 부식값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잘 버티고 있었지만 8월에 후원금이 급격히 줄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서울의 또 다른 보육원에서 일하는 직원 이모씨도 지난 1월 말부터 아이들의 바깥출입을 막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50여명의 아이가 집단생활을 하다 보니까 민감하게 체크할 수밖에 없다. 일반 가정이었다면 잠깐이라도 외출은 할 텐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기침 등 사소한 증상만 보여도 무조건 코로나 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지금까지 원생 5명 정도가 받았는데 무료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정부 기준에는 부합하지 못해 자비로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로당도 잇따라 문 닫아

서울 관악구의 한 경로당 앞 정자에 앉아 조일희(89)씨가 책을 읽고 있다. 경로당은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이우림 기자.

서울 관악구의 한 경로당 앞 정자에 앉아 조일희(89)씨가 책을 읽고 있다. 경로당은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이우림 기자.

경로당·복지관 등 사회복지시설이 지난 3월부터 6개월 넘게 운영을 중단하자 답답함을 호소하는 노인도 늘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조일희(89)씨는 이날 문을 걸어 잠근 경로당 앞 정자에서 성경책을 읽고 있었다. 조씨는 “집에서는 혼자 있으니까 경로당이 문을 닫은 후에는 보통 교회에 갔다. 근데 이제 교회도 문을 닫아 여기로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노인복지센터에 다니는 서모(74)씨도 “예전에는 여기서 친구들도 만나고 놀이 활동도 했는데 이제 일주일에 한 번 대체식만 받는다. 집에 있다 보니 답답하고 외롭다”고 말했다.

고위험군인 고령층이 모여있는 요양시설은 아예 가족 면회가 금지됐다. 2018년부터 경기도 양주의 한 요양병원에 아버지를 모신 나모(60)씨는 3월부터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나씨는 “어버이날도 찾아뵙지 못했다. 아버지가 귀가 안 좋으셔서 통화도 못 하고 있다”며 걱정했다. 서울의 한 요양시설 관계자는 “발길을 돌리는 가족들을 보면 우리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전문가 “취약계층 외면하면 결국 방역 실패”

전문가들은 코로나 19가 장기화할수록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취약계층의 경우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정부는 집에 머무르라고 하지만 가난하거나 소외된 이들에게는 차별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집이란 가족이 따로 사용할 수 있는 개별 화장실이 준비된 공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60여명이 함께 생활해야 하는 공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취약계층에게 우선적인 돌봄이나 지원을 제공해야 하지만 감염병 상황이 심각해질수록 외면받곤 한다. 취약계층까지 챙길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한다면 결국 방역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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