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의대생 국시 거부 사태, 파업 불씨 되지 않게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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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코로나19 와중에 최근 벌어진 의사 파업은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정부의 막판 타협으로 최악의 충돌은 피했지만 아직 완전히 꺼진 불이 아니다.

“4대 정책 철회” 외치며 시험 집단 거부 파장 #정부, 마지막 문 열어 놓고 의대생 설득해야

코로나19의 3, 4차 대유행이 언제든지 닥쳐올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고려하면 의사 파업이라는 ‘잔불’을 지금 단계에서 확실히 정리해 둬야 한다. 의사 파업의 불씨가 될 수 있는 잔불은 의대생들의 의사 국가고시 갈등 속에 숨어 있다.

의사 고시는 크게 실기시험과 필기시험으로 구성된다. 내년 1월 치를 필기시험에 앞서 실기시험은 당초 지난 1일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의사 파업 와중에 한 차례 연기됐다. 어제부터 11월 20일까지 순차적으로 치를 예정이었는데 신청자가 전체 응시 대상 3172명 중 446명(14%)에 그치면서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의대생들이 이처럼 국가고시를 거부하는 이유는 정부가 합의 없이 일방 추진한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등 ‘4대 정책’에 반대해 파업을 강행했지만 제대로 얻어낸 것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앞서 지난 4일 의협과 정부의 다소 성급한 합의가 의대생들의 반발에 빌미를 제공했다. 양측은 4대 정책 추진을 중단하고 의·정협의체를 만들어 재논의하되 의사들은 현업에 복귀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의대생과 강경파 전공의들은 4대 정책의 일단 중단이 아닌 완전 철회를 못 박으라고 촉구한다. 이 때문에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내부에서 강경파와 온건파가 합의 이후 계속 대립했다. 급기야 온건파 비대위 집행부가 사퇴하고 강경파들이 신비대위를 만들어 투쟁을 계속하기로 했다.

다행히 다수 병원의 전공의들은 어제부터 진료 현장에 복귀했다. 복귀하면서 전공의들은 “의대생 국시 미응시자들을 2주 안에 (정부가) 구제하지 않으면 다시 파업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은 의대생들에게 국시 신청 기회를 추가로 줄 수 없다는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전공의들이 조건부로 복귀한 상황이라 의대생 국시 구제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의사 파업이 다시 벌어질 공산이 크다. 게다가 의사 시험이 계속 차질을 빚으면 내년에 응급실 인턴, 공중보건의 등 의료 현장에 인력 부족이 우려된다. 10년 뒤가 아니라 당장 내년에 인력 부족 사태라는 발등의 불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따라서 정부와 의료계는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대야 한다. 원칙론과 명분에 집착하지 말고 현실적 타협을 도모해야 한다. 의협이 한 번 더 정부와 대화에 나서고 어른답게 의대생들을 설득해야 한다.

정부도 아예 문을 닫을 게 아니라 의대생들이 시험에 참여하도록 마지막 기회의 문을 열어 놓을 필요가 있다. 물론 의대생들은 구제 기회를 받을 경우 국민 앞에 사과하는 최소한의 도리를 해야 한다. 설마 하다 더 큰 화를 자초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