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오래]정통 위스키도, 가짜도 아닌 ‘스피릿 드링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84) 

스카치 위스키를 블렌딩해 알코올 도수를 낮춘 저도주. 여기에 합성 향료를 더하기도 한다. ‘부드러운 목 넘김’을 내세우는 이 술은 정작 위스키 원액을 수입한 스코틀랜드에선 위스키라 불릴 수 없다. 스코틀랜드에선 알코올 도수 40% 이상이 위스키의 필수 조건인데, 이 술들은 35%, 32.5%로 알코올 도수가 낮기 때문이다. 또 색을 입히기 위한 ‘캐러멜’ 외의 합성 향료를 써서 ‘위스키’ 대신 ‘스피릿 드링크(spirit drink)’라는 이름이 붙기도 한다.

스카치 위스키 원액으로 만든 대표적인 저도주 4종. 왼쪽부터 '더 스무스 바이 임페리얼12', '더블유19 바이 윈저', '더블유 허니 바이 윈저', '팬텀 디 오리지널'. [사진 김대영]

스카치 위스키 원액으로 만든 대표적인 저도주 4종. 왼쪽부터 '더 스무스 바이 임페리얼12', '더블유19 바이 윈저', '더블유 허니 바이 윈저', '팬텀 디 오리지널'. [사진 김대영]

저도주는 유흥주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골든블루’의 ‘팬텀’, ‘디아지오 코리아’의 ‘더블유 바이 윈저’ 시리즈, ‘페르노리카 코리아’의 ‘더 스무스 임페리얼’ 등이 대표적이다. 제품의 컨셉과 병모양은 모두 다르지만 공통점도 있다. 모두 450mL라는 점. 보통 위스키가 700mL니까 약 65%의 용량이다. 또 ‘키퍼캡’이라 불리는 ‘가짜 주류 방지캡’을 사용한다. 병 입구에 이 캡을 사용하면, 액체를 병에 재주입할 수 없어 가짜 주류 생산을 막을 수 있다.

액체 재주입 방지를 위한 ‘키퍼캡’. 가짜 주류 제조 방지 캡이다. [사진 김대영]

액체 재주입 방지를 위한 ‘키퍼캡’. 가짜 주류 제조 방지 캡이다. [사진 김대영]

위스키 마니아로서 궁금한 건 저도주의 맛과 향이다. 알코올 도수가 낮든 합성 향료가 들어갔든, 위스키로 만든 술이 맛만 좋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한 편이니 위스키와 소주 사이의 적당한 포지셔닝도 가능하다. 스카치 위스키 원액을 99% 이상 사용했으니, 위스키에 물을 탄 거로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여러 가지를 생각해봤지만 가장 좋은 건 직접 마셔보는 것. ‘팬텀 디 오리지널’, ‘더 스무스 바이 임페리얼 12’, ‘더블유 허니 바이 윈저’, ‘더블유19 바이 윈저’, 네 가지 저도주를 비교하며 마셔봤다.

왼쪽부터 더블유19 바이 윈저, 더블유 허니 바이 윈저, 더 스무스 바이 임페리얼 12, 그리고 팬텀 디 오리지널. [사진 김대영]

왼쪽부터 더블유19 바이 윈저, 더블유 허니 바이 윈저, 더 스무스 바이 임페리얼 12, 그리고 팬텀 디 오리지널. [사진 김대영]

우선 색이다. 네 가지 저도주 모두 밝은 황금빛의 비슷한 색이었다. 캐러멜 색소를 넣지 않았다는 표기가 없기 때문에 색소를 넣었을 확률이 높다. 대량으로 술을 만드는 경우 대부분 캐러멜 색소가 사용된다고 보면 된다. 색을 일정하게 맞추는데 이보다 편리한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색만 봐서는 보통의 위스키에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오히려 보통 이상의 아름다운 색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맛과 향은 완전히 갈렸다. 우선, ‘팬텀 디 오리지널’은 위스키 원액만 100% 사용한 35% 저도주다. 그런데 가장 숙성 풍미가 적었다. 향부터 위스키 스피릿 특유의 풀 내음과 알코올 향이 강하게 느껴졌다. 오크통에서 유래하는 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맛도 아주 약한 바닐라 맛이 살짝 스쳐 갔을 뿐, 위스키 스피릿 맛이 강했다. 목 넘김도 가장 거친 편이었다. 스트레이트로 마시긴 어려울 거 같고, 맥주 등 다른 술에 섞어 마셔야 할 것 같다. 다른 술과 달리 합성향료를 사용하지 않은 게 원인 같기도.

팬텀 디 오리지널 35%. 영국산 위스키 원액 100% 사용. [사진 김대영]

팬텀 디 오리지널 35%. 영국산 위스키 원액 100% 사용. [사진 김대영]

‘더블유19 바이 윈저’는 저도주임에도 19년 이상 숙성한 위스키 원액을 사용했다. 알코올 도수는 32.5%. 스코틀랜드산 위스키 원액 99.71%와 합성향료가 사용됐다. 향에서 스카치캔디, 꿀 등이 느껴졌다. 맛에서는 부드럽고 달콤한 그레인 위스키의 풍미가 많이 느껴졌다. 조니워커를 만드는 디아지오에서 만든 저도주라 그런지 조니워커와 맞닿아있는 느낌도 있었다. 피니시도 부드럽고 깔끔했다.

‘더블유 허니 바이 윈저’는 32.5%다. 스코틀랜드산 위스키 원액 99.73%, 꿀 0.01%, 그리고 합성향료가 사용됐다. 꿀이 들어간 만큼 더블유19보다 더 진한 꿀 향기가 먼저 다가온다. 그리고 맛도 더 달콤한 꿀맛이 강하다. 다만, 뒷맛이 좀 아쉬웠다. 피니시는 거의 느껴지지 않고, 심심하게 끝났다. 그래도 부드러운 목 넘김은 네 가지 저도주 중 가장 좋았다.

더블유19 바이 윈저(좌)와 더블유 허니 바이 윈저(우). [사진 김대영]

더블유19 바이 윈저(좌)와 더블유 허니 바이 윈저(우). [사진 김대영]

마지막으로 ‘더 스무스 바이 임페리얼12’. 알코올 도수는 35%다. 스코틀랜드산 위스키 원액 99.997%에 ‘마조람’ 추출물을 더했다. ‘마조람’이 생소해 찾아봤더니 향초 중 가장 향기가 강한 풀로 고기 요리, 샐러드, 수프 등의 향신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향은 살짝 스파이시하면서 허브 향과 몰트 향이 진한 편이다. 또 바닐라 향도 꽤 느껴진다. 다른 저도주에 비해 맛의 복합성 측면에서 월등했다. 12년급 위스키에 물을 타서 마시는 느낌이랄까. 마조람의 활약일까 좋은 위스키 원액의 힘일까 궁금하다.

더 스무스 바이 임페리얼 12. [사진 김대영]

더 스무스 바이 임페리얼 12. [사진 김대영]

네 가지 저도주 모두 향과 맛의 특성이 뚜렷했다. ‘팬텀 디 오리지널’이 내겐 가장 안 맞았지만, 누군가는 저숙성 위스키의 스피릿과 알코올 향이 맘에 들지도 모른다. ‘더블유’ 시리즈 2종은 알코올 도수가 낮아 누구나 편하게 벌컥벌컥 마실 수 있는 술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주보다 알코올 도수가 훨씬 높은데도 더 부드러운 건, 위스키의 숙성과 블렌딩의 마법 때문일 거다. 달콤한 맛이 두드러져 하이볼 등 칵테일로 만들어 마셔도 좋을 것 같다. 스트레이트로 마시기엔 ‘더 스무스 바이 임페리얼12’와 ‘더블유19 바이 윈저’가 좋을 것 같다. 피니시가 좋기 때문이다. 저도주라고 무시하지 말고 편견 없이 마셔보자. 어떤 위스키 원액이 쓰였고, 합성 향료 뉘앙스는 무엇인지 추리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