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형사소송법 148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강기헌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누구든지 자기나 친족 또는 친족 관계에 있었던 자가 형사소추 또는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사실이 발로될 염려 있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148조)

160자에 불과한 법조문 해석을 놓고 뜨거운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3일 법정에서 쏘아 올린 그것이다. 조 전 장관은 증인으로 출석해 “형사소송법 148조를 따르겠다”고만 답했다.

친족 간 증언거부권은 두터운 철학적 배경을 깔고 있다. 가족이란 기본적인 인간관계에 법이 개입해선 안 된다는 게 핵심이다. 그만큼 역사도 깊다.

부모와 자녀 간의 증언거부 특권의 연혁은 유태법과 로마법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고대 유태법에선 부모가 자녀의 이익에 반해 증언하는 것을 금지했다. 로마법에서도 가정이 사회의 기초이므로 가족 간의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가족에게 유해한 증언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인식했다. 가족 간의 증언을 강요하면 위증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나폴레옹법이 로마법을 기초로 했기 때문에 나폴레옹 지배의 확장과 더불어 가족 간의 증언거부 특권 제도도 널리 퍼지게 됐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 유럽에서는 가족 간의 대화 내용에 대한 증언거부의 특권이 폭넓게 자리 잡고 있다. (윤종행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가족 간 증언거부의 특권』)

하지만 가족 간 증언거부권은 사회 변화를 반영해 미국을 중심으로 예외가 인정되는 추세다. 미 연방대법원은 1839년 배우자를 위해 증언할 수 없다는 영국 보통법상의 원칙을 들여왔지만 1933년 이 원칙을 깨고 기소당한 배우자에게 이익이 되는 증언을 허용했다. 이후 1980년 피고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증인으로 요청받은 배우자의 선택에 따라 증언이 가능하다며 기존 판결을 뒤집었다. 미 로스쿨 교육 과정에서 강조되는 ‘트램멜 판결’이다. 연방대법원은 “증인에게 증언을 강요할 수 없지만, 증언 기회를 박탈할 수도 없다”고 봤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형사법 박사 학위를 받은 조국 전 장관은 법정에서 “형사법 학자로서 진술거부권의 역사적 의의와 중요성을 역설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미 연방대법원의 판례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강기헌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