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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응원글'에 간호사들마저 "감사하지만, 글 읽고 난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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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은 감사하지만 의사와 간호사가 협업해야 할 병원에서 글을 읽고 참 난감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간호사 격려 메시지를 두고 서울 소재 시립병원 3년 차 간호사 이모(27)씨가 한 말이다. 이씨는 3일 “코로나19 확진자가 퍼지고 있는 시기에 굳이 ‘간호사를’를 콕 집어 감사 메시지를 내 당황스러웠다”며 “정부가 간호사의 업무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해왔지만 제자리걸음인 것을 보면 이번 메시지가 의사 파업 여론을 이끌기 위한 ‘수단’으로 나온 것은 아닐까 싶어 실망도 됐다”고 밝혔다.

 지난 5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대구 중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중환자실 근무를 마친 간호사들이 보호복을 벗고 지친 모습으로 휴게실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지난 5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대구 중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중환자실 근무를 마친 간호사들이 보호복을 벗고 지친 모습으로 휴게실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일 문 대통령이 간호사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정작 간호사들마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대학병원 2년 차 간호사 이모(27)씨는 “간호사와 의사를 대립구도로 그려내는 것부터 잘못됐다”며 “전공의 파업으로 의료 공백이 생긴 것은 맞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 대신 의사들이 업무에 복귀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데에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한몫했다. 수도권 소재 코로나 전담병원 7년 차 간호사 A(30)씨는 “처음에는 대통령이 간호사의 처우 개선을 언급해 감사했지만 이제는 간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현 사태 이전에도 간호수가·진료보조인력(PA)인 간호사 법제화·전문간호사제도 등 처우 개선 관련 간호법 제정에 대해 끊임없이 말이 나왔지만 단 한 번도 받아들여진 적이 없었다”라고 토로했다.

의료 인력 부족 현상이 의사 파업과 관련 없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코로나 전담병원에서 일하는 6년 차 간호사 지모(29)씨는 “태움 문화, 건강 문제와 같이 간호사가 겪고 있는 근무환경은 의료 파업에 따른 갑작스러운 결과물이 아니”라며 “임상에 있는 내내 간호사는 부족했고 그러다 보니 늘 지쳐있었다”고 밝혔다.

“무조건적 인력 충원보다…처우 개선을” 

인력 부족 현상도 단순히 인원만 충원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경상남도 소재 병원에서 3년 차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공모(31)씨는 “14년 동안 간호대학을 늘려 간호사를 폭발적으로 배출했는데도 여전히 인력이 부족하다”며 “소위 말하는 서울 빅파이브(Big 5) 병원과 지방 병원의 간호 체계나 복지 등 인프라 차이가 극도로 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대구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대구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열악한 지방 병원에서는 ‘경력만 채우자’는 마음으로 일하고 떠나는 인력이 많다”며 “빈자리는 정부에서 늘려준 간호대학 졸업생으로 채워지게 되고 환자는 1년 미만 경력 간호사의 간호를 받는다”고 밝혔다. 이어 “남은 중간급(3~10년 차) 간호사는 언제까지 임상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이때부터 그 스트레스를 아래 연차가 감당하게 되는 ‘태움’ 현상이 시작된다”며 “무작정 인원을 늘리기보다 4~50명의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하는 일이 먼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편 가르기보다 간호사 진짜 목소리 들어달라" 

간호사 단체인 ‘젊은간호사회’도 지난 2일 공식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간호사의 노고를 알아주심에 감사드린다”면서도 간호사들의 어려움을 줄이는 방법은 간호대 정원 증원, 지역간호사제가 아니다. 간호협회가 아닌 진짜 간호사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했다. SNS상에서도 ‘우리는 다르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진 사진과 함께 “(의사와 간호사의) 편 가르기를 그만해달라”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2일 문재인 대통령이 간호사 격려 메시지를 내자 소셜미디어(SNS) 상에 올라온 글. [인스타그램 캡쳐]

2일 문재인 대통령이 간호사 격려 메시지를 내자 소셜미디어(SNS) 상에 올라온 글. [인스타그램 캡쳐]

문 대통령이 의료계와 정부가 협상을 전제로 합의안 마련에 착수한 상황에서 이런 메시지를 내는 것이 적절했냐는 비판도 나온다. 대화 국면에 들어간 정부와 의료계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앞서 지난 1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제로 상태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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