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인데 동네병원 가라?" 집단휴진 피해신고 하루 50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무기한 집단휴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2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등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무기한 집단휴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2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등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암 환자인 A씨(50대 후반)는 지난달 중순부터 10여일간 설사증세를 겪고 있다. 3일 이상 지사제를 먹었는데도 효과가 없다고 한다. 그사이 50㎏였던 체중은 45㎏으로 눈에 띄게 줄었다. 소화기계 암 환자인 A씨는 요즘 급격한 체중감소에 극도의 불안감을 호소한다.

설사에 45㎏으로 줄어든 체중 

A씨는 지난달 31일쯤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 연락했다.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전임의(레지던트를 마친 펠로) 집단휴진(파업)이 11일째 된 날이다. A씨는 “‘주치의 진료를 받을 수 있냐’고 상담사에 물었더니 ‘집단휴진으로 예약 자체가 안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 병원 응급실도 의료인력 부족으로 받아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게 A씨 주장이다. A씨는 “(대형병원 측에서) ‘동네병원을 가보라’고 하는데 동네병원은 우리와 같은 암 환자의 응급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며 “도대체 누구를 위한 집단휴진이냐”고 하소연했다.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무기한 집단휴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외래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뒤로 피켓시위 중인 전임의가 보인다. * 기사 속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습니다. 연합뉴스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무기한 집단휴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외래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뒤로 피켓시위 중인 전임의가 보인다. * 기사 속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습니다. 연합뉴스

파업 장기화 조짐에 환자 고통 커져 

의료계 파업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의료공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에 따른 환자와 환자 가족의 고통과 불만도 상당하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는 지난 1일 성명서를 통해 “(의료계) 파업은 무책임한 집단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전공의 비(非)근무 비율은 85.4%(2일 현재)에 달한다. 조사에 응한 전공의 수련기관 152곳 8700명 가운데 7431명이 근무하지 않고 있다. 전임의 비근무 비율은 29.7%다. 이런 집단 휴진 여파에 전국의 주요 병원들은 외래진료를 확 줄이고 급하지 않다고 판단된 수술은 뒤로 미루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무기한 집단휴진에 들어간 가운데 1일 오후 대전에 위치한 한 의과대학에 히포크라테스 선서 비석 앞으로 대학 관계자들이 지나고 있다. 뉴스1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무기한 집단휴진에 들어간 가운데 1일 오후 대전에 위치한 한 의과대학에 히포크라테스 선서 비석 앞으로 대학 관계자들이 지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차 파업때 안타까운 일도 

지난달 7일 1차 전공의 파업 때 발생한 일이다. 당시 파업 기간은 하루였다. 담낭암 환자 B씨는 공교롭게도 이날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이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수술이 10일로 사흘 연기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암환자권익협회에 따르면 연기 통보를 받은 8월 7일 오전 10시쯤부터 B씨는 갑자기 복통·가래 등을 호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병동에는 간호사밖에 근무하지 않았다. 담당 교수는 회진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B씨와 가족은 이날 오후 4시쯤에서야 의사를 직접 만날 수 있었지만, 소견상 특별한 문제점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B씨는 하루 뒤 새벽 호흡곤란을 보였고, 현재는 ‘식물인간’ 상태다. B씨 가족은 집단휴진 등에 따른 “의료사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청원에 고충 토로글도  

또 청와대 국민청원에서는 ‘엄마의 암 수술이 연기됐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글쓴이는 “수술 날만 기다려온 환자와 보호자로서 (집단휴진으로) 속절없이 흘러가는 하루는 숨 막히고 힘들다”고 썼다.

정부는 지난달 31일부터 집단휴진 피해신고지원센터를 열었다. 첫날 하루에만 47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둘째 날인 지난 1일에는 57건이 들어왔다. 지원센터에서는 법률상담과 의료기관 분쟁조정 등을 지원한다.

진답휴진은 언제까지 

하지만 집단휴진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의료계가 정부와의 막판협상을 위해 단일 협상안 마련에 착수한 상태다. 대한의사협회는 3일 ‘범 의료계 4대악 저지투쟁 특별위원회’(범투위) 3차 회의를 열어 입장을 정리한 뒤 협상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후 정부와의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장은 “의료공백으로 환자들은 불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며 “지금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볼모로 삼고 의료현장을 떠나 있는 의료인들은 즉각 복귀해달라”고 강조했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전공의의 진료복귀를 다시 한번 요청한다. 진료복귀가 늦어질수록 고통을 받는 환자들이 늘어날 것”이라며 “의료인의 주장은 환자 곁을 지킬 때 더욱 의미가 있다. 하루빨리 지켜야 할 곳으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세종=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