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물" 망신준 교사 감형…아들 떠나보낸 아버지는 절규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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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25일 오전 11시30분쯤 경북 포항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이 투신을 하기 전에 고민하며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폐쇄회로TV(CCTV)에 찍혔다. [사진 학생 아버지]

지난해 3월 25일 오전 11시30분쯤 경북 포항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이 투신을 하기 전에 고민하며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폐쇄회로TV(CCTV)에 찍혔다. [사진 학생 아버지]

“아이가, 아이가 죽었는데 죄가 없다니요.”

포항서, 교사에게 혼난 학생 극단적 선택 #1심 재판부, 교사에 1심서 징역 10개월 #대구지법 "원심 무겁다"며 집행유예 감형

28일 오후 3시 대구지법 신별관 201호 법정. 선고가 끝난 직후 한 남성이 판사를 향해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외쳤다. 지난해 학교에서 투신해 사망한 중학교 3학년생의 아버지였다. 그러자 판사는 “죄가 없다고 판결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이어 남성이 “제 아이가 (교사의 꾸지람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지만, 단 한 번도 교사에게서 제 자식의 죽음에 관해 설명이나 사과를 듣지 못했다”고 울부짖자, 판사는 “유죄이지만, 피고인(교사)의 행위에 대해서 이정도 책임을 지우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대구지법 제4형사부(부장판사 이윤호)는 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경북 포항 모 중학교 교사 A씨의 항소심에서 원심의 실형을 파기하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징역 10개월의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1심 선고와 함께 수감된 A교사는 풀려나게 됐다.

 이날 재판부는 “교사의 행위는 학생을 자살로 이르게 한 정서적 학대에 해당한다”면서도 “다만 그가 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교사일 정도로 관계가 좋았고, 교사 처지에서는 학생 자살을 예견하기가 어려웠을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원심이 무겁다고 판단했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또 재판부는 “재범 가능성이 현저히 낮기 때문에 취업제한 명령을 선고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수업시간 교사가 망신주자…홀로 남은 학생

사건은 지난해 3월 25일 발생했다. 포항 북구의 한 중학교 3학년생인 B군은 이날 오전 도덕 시간 A교사에게 “선정적인 만화책을 봤다”며 꾸지람을 들었다. 교사가 감기에 걸려 자습을 하던 중이었다. B군은 “성인물이 아니라 여자의 모습이 그려진 삽화가 든 서브컬처(비주류문화) 소설책”이라고 맞섰다. 이에 A교사는 “수영복을 입은 여자 사진은 뭐냐”고 했고, 주변 학생들이 웃었다. A교사는 B군에게 20분 정도 얼차려를 줬다.

 이후 B군은 다음 체육 시간 수업에 참석하지 않고 혼자 교실에 남았다. 해당 학교 폐쇄회로TV(CCTV)에 따르면 30분가량 교실에서 머무르던 B군은 갑자기 5층으로 향했다. 이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지난 25일 경북 포항의 한 중학교에서 투신한 학생이 본 책. [사진 학생 유족]

지난 25일 경북 포항의 한 중학교에서 투신한 학생이 본 책. [사진 학생 유족]

 재판부에 따르면 실제 B군이 본 책은 중·고교생이 흔히 접하는 이른바 ‘라이트노벨’이라고 부르는 대중소설이었다. 라이트노벨은 주로 청소년 대상의 가벼운 대중 소설로, 일본 애니메이션 풍의 삽화가 그려진 판타지·연애 물이다. 숨진 B군의 도덕책에는 “(교사가) 책 내용은 확인도 안 하고. 무시당하였다. 살기 싫다”, “내게 책 빌려준 친구는 혼내지 마시라”는 등 유서 형태의 글이 적혀 있었다. A교사는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됐다.

 유족은 교사의 배려심이 부족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B군 빈소에서 만난 아버지는 “교사가 표지라도 봤으면 아들에게 ‘성인물을 봤다’며 나무라지 못했을 것”이라며 “물론 자습시간에 소설책을 본 건 아이의 잘못이지만, 교사의 배려가 있었다면 아이가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을까 싶다”고 말했다.

1심 “교사의 정서적 학대로 학생 사망”

경북 포항의 한 중학교에서 지난해 3월 25일 중학교 3학년생이 도덕교과서에 "무시를 받았다"는 유서형 글을 남긴 채 투신했다. [사진 학생 아버지]

경북 포항의 한 중학교에서 지난해 3월 25일 중학교 3학년생이 도덕교과서에 "무시를 받았다"는 유서형 글을 남긴 채 투신했다. [사진 학생 아버지]

 앞서 지난 4월 1심 재판부는 교사의 체벌 행위가 정서적 학대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구지법 포항지원 형사1단독 신진우 판사는 A교사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하면서 “교사가 정서적 학대행위를 해 학생이 투신 사망에 이른 사건으로 죄질이 무겁고 유족이 엄벌을 탄원하는 점을 고려해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40시간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아동 관련 기관 5년간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누리꾼 ‘학대’ 두고 갑론을박

해당사건을 다룬 기사에는 댓글이 3000개가 넘게 달렸다. 누리꾼은 교사의 행위가 학대냐, 아니냐로 의견이 분분했다. “아이의 나약함이 문제”라는 댓글이 달리자, 한 교직원은 “단순히 나약함으로 보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반박 의견을 댓글로 냈다. 그는 “세대를 공감하지 못한 교사의 실수”라며 “요즘 아이들은 온갖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성향을 형성하는 과정이 빨라 성격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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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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