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불지른뒤 흉기 들고 봉쇄, 관리인 숨지게한 세입자 징역12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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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5일 오후 11시 55분께 전북 전주시 동완산동 한 주택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 60대 집 관리인이 숨졌다. 전주 완산경찰서는 같은 달 29일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이 집에 세 들어 살던 A씨(60)를 구속했다. 사진은 불에 탄 주택 내부.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5일 오후 11시 55분께 전북 전주시 동완산동 한 주택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 60대 집 관리인이 숨졌다. 전주 완산경찰서는 같은 달 29일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이 집에 세 들어 살던 A씨(60)를 구속했다. 사진은 불에 탄 주택 내부. [연합뉴스]

 크리스마스 한밤중에 본인이 세 들어 살던 집에 불을 질러 집 관리인을 숨지게 한 60대 세입자가 법원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남성은 밀린 월세 독촉에 화가 나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불이 나자 집 관리인은 집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이 남성이 문 앞에서 흉기를 들고 서 있어서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사건추적] #불 질러 집관리인 숨지게 한 혐의 #문 앞서 흉기 들고 못 나오게 막아 #피고인 "월세 독촉에 홧김에…" #변호인 "알코올중독·조현병탓" 주장 #재판부 "심신미약 아냐…살해 의도"

 전주지법 형사12부(부장 김유랑)는 자신이 세 들어 살던 집에 불을 질러 집 관리인을 숨지게 한 혐의(현주건조물방화치사)로 기소된 A씨(60)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고 27일 밝혔다. A씨는 알코올 중독과 조현병 치료 이력을 들며 심신 미약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살해 의도가 있었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성탄절 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A씨는 지난해 12월 25일 오후 11시55분께 전북 전주시 동완산동 자신이 세 들어 살던 집에 불을 질러 집 관리인 B씨(사망 당시 61세·여)를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불이 난 집은 10평(33㎡)도 안 되는 1층짜리 오래된 집이었다. 작은 방 3개와 부엌 등으로 이뤄졌고, A씨와 B씨를 비롯해 세 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나머지 한 세입자는 방화가 일어나기 며칠 전 지인을 만나기 위해 집을 비워 참변을 피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18년 5월부터 월세 25만원을 내며 이 집에서 살았다. A씨와 B씨 모두 기초생활수급자로 매달 60만원 정도의 생계급여를 받으며 생활해 왔다고 한다. A씨는 사건 당시 석 달 치 월세(75만원)를 밀렸던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사건 당일 라이터를 이용해 천 조각에 불을 붙여 B씨 방 앞에 둔 것으로 조사됐다. 겨울에 얼지 않게 보일러 관을 감싼 헝겊을 불쏘시개로 삼았다. 집이 낡은 데다 문과 창틀 등이 나무로 만들어져 불은 삽시간에 번졌다.

지난해 12월 25일 오후 11시 55분께 전북 전주시 동완산동 한 주택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 60대 집 관리인이 숨졌다. 전주 완산경찰서는 같은 달 29일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이 집에 세 들어 살던 A씨(60)를 구속했다. 사진은 불에 탄 주택 내부.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5일 오후 11시 55분께 전북 전주시 동완산동 한 주택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 60대 집 관리인이 숨졌다. 전주 완산경찰서는 같은 달 29일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이 집에 세 들어 살던 A씨(60)를 구속했다. 사진은 불에 탄 주택 내부. [연합뉴스]

 B씨는 A씨가 흉기를 든 채 "나오면 죽이겠다"며 문 앞을 막고 서 있어서 방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었다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B씨는 다급히 다른 지역에 사는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남동생이 집주인이고, B씨는 동생 집에 살면서 세입자들에게 월세를 받아왔다고 한다.

 남동생은 곧바로 112에 신고했지만, B씨는 방 안 화장실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방과 화장실에 창문이 있었지만, 방범용 쇠창살이 설치된 데다 너무 좁아 탈출하기 어려웠다. 부검 결과 B씨 사망 원인은 '기도 폐쇄에 의한 질식사'였다. A씨는 불길이 집 전체를 뒤덮은 뒤에야 현장을 벗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도주한 A씨는 범행 이튿날 오후 3시께 전주시 완산구 한 전통시장을 지나가다가 그를 알아본 동네 주민 2명에 의해 붙잡혔다. 주민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A씨를 긴급체포했다.

 A씨는 경찰에서 "나는 월세를 다 줬다고 생각했는데 B씨가 '밀린 월세를 내라'고 다시 독촉했다. (범행 당일) B씨가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와 내가 '얘기 좀 하자'고 했는데 문을 '쾅' 닫고 방에 들어가 순간적으로 화가 나 불을 질렀다"고 말했다. "방화 혐의는 인정하지만, 계획 범행은 아니다"는 취지다.

 A씨는 법정에서 "범행 당시 심신 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심신 미약은 마음이나 정신의 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를 말한다. 형법에서는 형 감경 사유가 된다. A씨 변호인은 "피고인은 알코올 의존 증후군(알코올 중독)으로 치료를 받았으며, 정신 감정 결과 조현병 등 정신 질환 증세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사건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점 ▶충동적이 아니라 피해자를 살해할 의도를 가지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CCTV가 없는 이면도로를 통해 도주한 점 ▶수사관과 정상적인 대화를 나눈 점 등을 토대로 심신 미약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범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라며 "피고인이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지 않은 점, 유족에게 용서받지 못한 점 등을 감안할 때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만 범행을 인정하고 있고, 정신과적인 병력이 범행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점 등을 감안해 형을 정했다"고 했다.

 A씨는 27일 현재까지 법원에 항소장을 내지 않은 상태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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