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사고 때 이장·통장 앞장선다…충남, 전국 최초 '현장조치 매뉴얼' 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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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에서 이장을 맡고 있는 박모(52)씨는 2~3일에 한 번 꼴로 마을 방송을 한다. 장마철을 맞아 폭우나 강풍·만조 등 재난·사고에 대비해달라는 안내를 하기 위해서다. 이전부터 해오던 일로 정보를 전달하는 정도였다.

지난해 8월 14일 충남 보령시 비채팰리스에서 열린 이·통장 워크숍에서 양승조 충남지사(앞줄 왼족 넷째)가 참석자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충남도]

지난해 8월 14일 충남 보령시 비채팰리스에서 열린 이·통장 워크숍에서 양승조 충남지사(앞줄 왼족 넷째)가 참석자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충남도]

하지만 이달 말부터 박씨 등 충남지역 이·통장들은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재난·사고가 발생하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을 대신해 신속하게 상황을 전달하고 주민 대피나 피해복구도 돕게 된다. 충남도가 새로 제작한 ‘이·통장 현장 조치 매뉴얼(안내·설명서)’ 제작에 따른 후속 조치다. 이·통장 매뉴얼을 만든 것은 전국에서 충남이 처음이다.

상황전파·주민대피 단계별 대응요령 담아 #충남지역 이·통장 5719명 대상 배포·교육 #양승조 충남지사 "이장·통장들 역할 기대"

충남도는 각종 재난과 사고 발생 때 상황을 신속하게 전파하고 정부·지자체의 대처를 도울 수 있도록 ‘이·통장 현장 조치 매뉴얼’을 제작, 배포했다고 21일 밝혔다. 마을 주민과 구석구석을 가장 잘 아는 이·통장들로부터 실질적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이달 말까지 매뉴얼을 15개 시·군을 통해 도내 5719명의 이·통장에게 전달하고 회의 때 활용법을 안내할 예정이다.

충남은 도시와 농촌·어촌이 복합적으로 이뤄진 지역이다. 도시의 경우 재난·사고 때 신속한 전파와 대피가 가능하지만, 농·어촌 지역은 고령화에다 주민들이 생업 때문에 집을 비우는 이가 많아 제때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지역이 넓어 공무원들이 일일이 마을을 돌아다닐 수 없는 데다 마을방송만으로는 상황 전파나 대처가 제한적이다. 도심처럼 휴대전화를 통한 상황 전파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충남도가 도내 5719명의 이·통장에게 베포한 '이·통장 현장조치 안내(설명)서'. [사진 충남도]

충남도가 도내 5719명의 이·통장에게 베포한 '이·통장 현장조치 안내(설명)서'. [사진 충남도]

이 때문에 자치단체는 마을 일에 관한 한 이·통장들의 도움을 적잖이 받아왔다. 적게는 4~5년에서 많게는 20년 이상 이·통장으로 일해온 만큼 이름만 대도 동네 주민을 아는 ‘터줏대감’이어서다. 그 동안 각종 재난·사고 때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정부·지자체 차원의 명확한 기준이나 지침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작한 게 이·통장 현장 조치 매뉴얼이다.

매뉴얼에는 재난·사고 발생 때 단계별 대응 요령과 이·통장들의 역할 등이 담겼다. 주요 내용은 ▶재난이 일어나면 해야 할 일(재난유형별 이·통장 역할, 마을방송 등) ▶도민 안전 관련 정보(안전보험·풍수해보험·안전점검청구·긴급신고요령 등) ▶위급할 때 연락할 곳(재난·사고 관련 비상연락망, 장비·물자·인력 지원 연락처) 등이다.

매뉴얼에 따르면 이·통장은 상황이 발생하면 신속히 주민들에게 전파하고 마을 협력체계를 통해 추가 연락을 취하게 된다. 이어 주민의 대피를 돕고 자치단체·소방서에도 현장 상태를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현장에 나온 공무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업무 협조도 맡는다. 독거노인 방문과 주민 복귀 등도 이·통장들이 맡게 된 임무다.

재난 유형별(화재·코로나19 등 사회재난 및 자연재난) 이·통장의 역할과 방송안내문도 매뉴얼에 수록됐다. 마을 내 협업체계 구축 방법과 대피시설 현황도 담겼다.

지난해 8월 14일 충남 보령시 비채팰리스에서 열린 이·통장 워크숍에서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충남도]

지난해 8월 14일 충남 보령시 비채팰리스에서 열린 이·통장 워크숍에서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충남도]

양승조 충남지사는 “재난과 사고 발생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응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라며 “매뉴얼을 통해 도내 이·통장들이 재난현장 조치 능력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성=신진호 기자 shin.ji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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