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3년 실정 반복하지 않으려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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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4호 31면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지독히도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 자부심과 자기애가 차고 넘쳤다. 그야말로 우주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았다. 1961년 1월 알제리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 직후,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들에게 감사를 표해야 하지 않느냐는 조언에 그는 이렇게 반문했다.

부동산·북핵·국민통합·일자리 #뭐하나 제대로 된 게 있는가 #내 편만 챙기는 패거리주의 탓 #반대 쪽 목소리도 귀 기울여야

“아니, 프랑스가 어떻게 프랑스한테 감사한단 말이오?”

자신이 곧 프랑스였던 것이다. 자기가 없으면 프랑스는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이같은 드골의 자기중심주의는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만년에 이르러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곤 했다.

“그건 내가 곧 프랑스였던 시절의 일이었지.”

정계에서 은퇴한 직후 최측근 국회의원 한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드골은 담담하게 말했다.

“글쎄, 또 하나의 새로운 드골을 찾아내야 하지 않겠소?”

자신이 프랑스의 시작이요, 끝이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자만, 심지어 오만으로까지 비칠 수 있는 사고 구조였다. 오늘날 이 땅 대한민국에서 차고 넘치는 오만한 자기중심주의처럼 말이다.

드골 얘기는 잠시 놔두고 우리 얘기를 해보자. 기자 생활 30년, 그중 절반 가까이 칼럼을 써왔지만, 지금처럼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정부가 있었나 싶다. 능력이라도 있어야 자만에 빠지고 오만을 발휘하는 법인데, 이 정권은 준비도 되지 않고 실력도 없으면서 자아도취적인 아마추어리즘을 무한대로 시전하고 있다.

선데이 칼럼 7/11

선데이 칼럼 7/11

김현미 장관의 ‘21타수 무안타’ 부동산 대책이 세간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지만, 그것 말고도 이 정부 3년 동안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있는지 모르겠다. 말 나온 김에 부동산부터 보면, 이건 정책 실패를 넘어 예고된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징벌에 가까운 세제 도입에도 불구, 서울의 아파트값은 신고가(新高價)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여당·청와대 인사들이 아파트를 팔지 않고 두세 채씩 붙들고 있었던 게 다 계획이 있었던 거다. 정권 내에서도 이너서클에 끼지 못한 인물들만 행여 찍힐세라 서둘러 처분해 손해를 봤다. 공연히 말 한마디 잘못한 비서실장만 ‘똘똘한 한 채’를 지키려다 무주택자가 되게 생긴 코미디가 벌어졌다. 그렇게 이익을 좇는 게 인간의 본성이거늘, 다수 국민을 투기꾼으로 몰다가 실수요자들에게 세금 폭탄을 안기고 젊은 층의내 집 마련 꿈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북핵 문제는 또 어떤가.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전 “대통령이 되면 우리 국방의 근간인 한미동맹을 더욱 튼튼히 하고, 이를 기초로 북핵에 대처하는 핵심전력을 조기에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데 배신감을 느껴 북한이 핵보유국이 됐다”는 대통령 멘토 같은 이들에 쌓여 한미동맹은 갈수록 흔들리고 있고,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핵심전력 구축은 요원한 일이 됐다. 그러는 사이 대통령은 북한 냉면집 주방장한테까지 막말을 듣는 처지가 됐고, 과거 대북송금의 실무책임을 맡았었고 그 와중에 떡고물도 챙겼던 인사가 대한민국 정보를 책임지는 국정원장이 됐다.

문 대통령이 약속했던 국민 통합은 이뤄졌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을 거치면서 분열과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아 왔다”는 대통령 말은 맞지만, “대결만 일삼는 정치를 청산하고 대화와 타협의 새정치 시대를 열겠다”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앞선 9년에 3년이 더해지면서 이 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거의 ‘내전’ 수준으로 확대됐다. 흠 많은 우리 편을 법무장관에 ‘묻지마 임명’했다가 탈이 났고, 복수를 ‘명받은’ 후임 법무장관은 우리 편인 줄 알았더니 ‘적’이었던 검찰총장을 쫓아내려 혈안이 돼 있다. 이런 편 가르기에 희생된 국민들은 폭발 일보 직전의 (그나마 코로나 때문에 집회를 못 해 억제되고 있는) 갈등을 보이고 있고, 그 와중에 선량들은 국민대표라는 본분을 잊고 스스로 정권 하수인으로 몸을 낮추며 갈등을 증폭시키느라 여념이 없다.

경제와 일자리 역시 국가채무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고 ‘인국공 사태’가 터질 만큼 청년들의 부담과 박탈감이 크지만, 처음부터 이 정권에 큰 기대가 없었으니 실망할 것도 없다.

정권의 실정을 지적하면서 드골 얘기로 시작했던 건, 그러한 거인 역시 오만한 자기중심주의로 몰락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드골의 오만은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조국 프랑스에 대한 자긍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를 다른 방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자신을 줄기차게 비판하던 사르트르에 본때를 보이라는 측근들의 조언에 드골은 손사래를 쳤다.

“놔둬. 그도 역시 프랑스야.”

현 정권 역시 같은 애국심 위에 발을 딛고 서 있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애국심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을 받아들이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내 편만 무작정 챙기고 다른 편은 무조건 내치는 패거리주의만 보인다. 이제라도 고개를 돌려 반대쪽도 바라봐야 한다. 내 진영의 아우성에서 떠나 다른 편의 소리에 귀를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은 임기도 지난 3년과 다를 게 없을 터다. 정말 걱정이 돼서 하는 소리다. 정권도 그렇지만 이 나라 이 국민이 불쌍해서 그런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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