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뛰어들고 싶다" 극단선택 소방관, 법원은 산재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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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12년간 구급업무를 담당하다 공황장애 얻어 극단적 선택을 한 소방관의 순직을 인정했다.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연합뉴스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연합뉴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수석부자판사 김국현)는 28일 소방공무원 A씨(사망 당시 46세)의 아내 B씨가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낸 순직유족급여 부지급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사망한 A씨는 1992년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돼 2001년부터 화재진압 업무 외에 구급업무를 함께 담당해왔다. A씨는 2015년 4월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내 B씨가 인사혁신처에 순직 신청을 했으나 인사혁신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 1월 인사혁신처는 "A씨가 B씨에게 경제적 문제를 언급하며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문자메시지를 보낸 게 확인된다"며 "반면 직무와 관련해 직접적 사망 계기로 볼 수 있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순직유족급여 부지급처분을 내렸다. 사망과 공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B씨는 "남편이 구급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그로 인해 정신질환을 앓다가 악화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이라며 소송을 냈다.

법원은 A씨의 순직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A씨는 참혹한 현장들을 목격할 수밖에 없는 구급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그런데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공황장애,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등 정신질환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동료들의 증언이 A씨의 순직 인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동료들에 따르면 A씨는 구급업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소방관들이 기피하는 119 상황실에서 근무하고 싶어했고, 잠시 구급업무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복귀하라는 공문을 받았을 떄 "이건 말도 안된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또 "불이 나면 혼자 불에 뛰어들어 죽고 싶다", "출근길에 운전대를 놓고 싶다"는 말을 주변 동료들에게 수시로 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A씨가 극심한 스트레스와 정신질환으로 심신의 고통을 받다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정상적 인식능력 등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 상황에 이르러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공무와 사망 사이 상당한 인과관계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봤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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