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GDP 대비 가계 빚 증가 속도 1위…신용대출도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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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계부채가 주요국과 비교해 가장 빨리 불어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민간 부문 신용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서울 시중은행 대출 상담 관련 창구 모습. 뉴스1

서울 시중은행 대출 상담 관련 창구 모습. 뉴스1

21일 국제결제은행(BIS)이 공개한 세계 43개국의 GDP 대비 부채비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민간부문(가계+기업) 신용 비율은 지난해 4분기 기준 197.6%로 직전 분기(195%)보다 2.6%포인트 올랐다. 싱가포르(7.2%포인트)·칠레(3.1%포인트)에 이어 증가 속도가 세번째로 빨랐다. 2018년 4분기와 비교해보면 10%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가계 부문의 신용 증가 속도는 비교대상 국가 중 가장 빨랐다.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지난해 4분기 기준 95.5%로 직접 분기(93.9%)보다 1.6%포인트 높아졌다. 홍콩(1.6%포인트)과 비슷한 수준으로 증가했다. 노르웨이(1.0%포인트)·중국(0.8%포인트)·벨기에(0.8%포인트) 등이 뒤를 이었다.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의 절대 수준은 스위스(132%)·호주(119.5%)·덴마크(111.7%) 등에 이은 7위였다.

비금융 기업 신용의 GDP 대비 비율은 102.1%로 직전 분기 101.1%보다 1%포인트 올랐다. 싱가포르(6.9%포인트)·칠레(2.7%포인트)·사우디아라비아(2.1%포인트)에 이어 네번째로 상승 폭이 컸다. 2018년과 비교해서도 싱가포르(11.1%포인트)·칠레(9.2%포인트)·스웨덴(7.3%포인트)에 이어 네번째로 증가 속도가 빠랐다. GDP 대비 비금융기업 신용 비율의 절대 수준은 17위로 일본(103.9%)과 비슷했다.

부채 증가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는 GDP 대비 민간 부문의 신용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200%를 넘어설 게 유력하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가계와 기업 모두 대출이 큰 폭으로 늘고 있어서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예측한 한국의 올해 GDP 성장률은 -1.2% 수준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은행의 기업 대출 규모는 945조1000억원이다. 올해 들어서만 76조2000억원이 늘어나 이미 지난해 증가 폭(44조9000억원)을 넘어섰다. 특히 대기업이 5월까지 27조5000억원을 은행에서 빌리며 증가세를 이끌었다. 지난해 대기업은 2조4000억원의 대출을 순상환 했다.

가계 대출도 큰 폭으로 늘었다. 올해 5월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920조7000억원이다. 올해 들어 32조4000억원이나 불었다. 특히 6월에는 신용대출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17일 기준으로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개인 신용대출 잔액은 116조5544억원으로 5월 말보다 1조8685억원 늘었다. 이미 지난 5월 한 달간 신용대출 증가 폭(1조689억원)을 앞질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 확산 전부터 부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이를 가속화한 측면이 있다”며 “성장과 투자에 기여하는 부채가 아닌 생존을 위한 부채가 큰 폭으로 증가하는 건 향후 민간과 정부 부문에 큰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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