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인내” 하루만에 北도발···與 대북정책 시험대 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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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20년 동안 평양은 냉면 빼고 다 바뀌었는데 그중 가장 많이 바뀐 게 마음이다. 우리가 인내심을 가지고 추진하면 한반도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 수 있다.”

지난 15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20주년 더불어민주당 기념행사에서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한 말이다. 그로부터 28시간 후인 16일 오후 2시 48분 북한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갑작스러운 북한의 도발에 “남북관계를 풀어갈 해법은 오직 신뢰와 인내”라고 외치던 민주당의 대북정책은 시험대에 올랐다.

이미 지난 13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담화문에서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며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남북관계를 4·27 판문점 선언 이전으로 되돌리겠다는 경고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민주당 지도부는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를 추진하겠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조속한 재개도 추진돼야 한다"는 기존 주장만 되풀이했다. 다른 여당 의원들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 15일에는 민주당 의원 169명(범여권 174명)이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긴장감이 고조되는 남북관계의 해결책으로 민주당이 가장 강조했던 것은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추진이었다. "약속은 우리가 어겨놓고 화내는 상대를 탓할 수 없다"(김두관 의원)며 남북관계 악화의 원인을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탈북민에 돌렸다. 하지만 북한의 무력도발로 민주당이 기존에 내세웠던 해법은 힘을 잃게 됐다.

4일 노동신문 담화를 통해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9·19 군사기본합의서 파기까지 경고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연합뉴스]〈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4일 노동신문 담화를 통해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9·19 군사기본합의서 파기까지 경고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연합뉴스]〈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직후인 16일 오후에는 민주당도 북한을 향해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은 이번 사건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민주당과 정부는 긴밀하면서도 강력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에 대해서도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북한의 추가적 도발 가능성에 대비, 비상한 각오로 대처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앞서 열린 당 대표 주재 긴급회의에서도 "상황이 엄중한 만큼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자"는 얘기가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에서는 여당의 향후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소수 야당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 "화가 난다고 밥상을 모두 엎어버리는 행동"(정의당), "문명국가의 상식과 규범을 벗어나는 일"(국민의당)이라고 모처럼 한목소리로 북한을 비판했다. 원 구성 문제로 민주당과 대립했던 미래통합당도 "국민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초당적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다시 '거대 여당'으로 공이 넘어온 셈이다.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이사장은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대북 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이라며 민주당에 대북 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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