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보조기구의 허와 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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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자기장을 일으키는 소형 추진력 전자 자장 발전기. 이 기구를 착용하시면 남성의 성욕과 발기력이나 생산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무공해 실리콘을 인체 공학적으로 옥, 세라믹, 특수 자석을 혼합 가공한 제품입니다. 인체에 유익한 원적외선이 방사되어 혈액 순환, 세포증가 작용, 냄새 제거, 항균 작용등 각종 생체 효과를 주는 신비의 정력 증강품입니다. 강하고 왕성한 성생활로 가정 화목을 원하시는 분, 기가 약하신 분, 체력이 약하고 만성피로를 느낄 때 발기력이 약하고 조루증세가 있는분, 자신감 있는 남성이 되고 싶을 때…"

소위 섹스 보조기구의 현란한 광고 문안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다.

주의사항 : 과도한 성욕증대로 인한 성 관계를 절제하십시오"라는 경고문안이 걸작(?)이다.

그 뿐 아니다. 페니스에 링 형태의 기구를 착용하면 링의 재질에서 발산되는 기(氣)가 남근 치골의 경혈에 주입되어 약화된 남성기능을 향상시켜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랫도리에 몸가락지를 끼고 왜래를 찾아오는 환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결코 싸지 않은 몸가락지를 남의 눈에 띠지도 않는 은밀한 신체부위에 착용하고 다니는 남자들. 그건 차라리 연민이다. 원래 섹스에 관한 한 진지한 코미디가 많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만큼 성력에 관한 내밀적 관심의 크기란 상상을 초월한 것이다.

한때 남자들 사이에서 손가락 반지 착용이 유행했었다. 웬만한 남자라면 거의 예외없이 손가락에 두세개의 반지를 끼고 다녔다. 장신구가 아니라 건강과 정력을 개선시켜 주는 신통한(?) 반지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 반지 처방을 받기 위해 모처에 장사진을 쳤다는 쓸쓸한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교육 수준이나 사회적 신분이 어지간한 사람들이 스스로 연출한 단막 희극이었다. 그 비약같은 정력 반지들이 지금은 죄다 어디로 갔을까? 텅빈 손가락이 새삼 허전하기만 하다.

재작년이었던가? 뉴욕 뒷골목, 파리 피갈, 프랑크푸르트의 역전, 동경 신주쿠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섹스샵이 한국에 상륙했다고 잔잔한 법석을 떨었다. 기껏해야 호두안에 들어있는 콘돔을 포함한 40여종류의 각종 외제 콘돔, 남성용 자위행위 기구, 옥으로 만든 정력 링, 외설잡지, 에로 비디오, 콘돔 부케, 콘돔 모양이 그려진 티셔쓰등만을 취급하는 한국판 섹스 샵이었다.

일부 선진국에선 보편화된 사업이라고는 하지만 한국, 그것도 도시 한복판에 버젓이 섹스샵이 들어섰다고 흥분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흥분한 사람들 가운데 그걸 구입하여 착용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다. 시대적 조류와 섹스의 속성으로 보아 이제 차라리 그걸 제한적으로나마 이해하고 허용해야만 하지 않을까? 제한하고 구속할수록 신기한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사이비 성놀이 기구들의 암중 성행을 막을 수 있다.

더구나 서구의 애덜트 샵에 비하면 우리의 그것은 아직 유치하고 순진하기까지 한 초보 단계 아닌가? 선진제국에선 쾌감을 극대화시킬 목적으로 제조한 성놀이 기구들이 버젓하게 진열되어 있고 신문 잡지엔 노골적인 섹스 광고가 즐비하다. 금새라도 쫘악 벌리고 대들 것 같은 도발적인 암컷들의 모습이 도처에 깔려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오히려 섹스에 대한 호기심을 정제시킬 수도 있다. 근래 우리나라에서 발간되는 옐로우 페이퍼도 점점 서구의 열기에 편승하고 있다.

파워맥스, 조루지오, 쿠션볼 센스, 바이오 터보링, 자연산 백옥, 파워맨, 파워링, 바이오 남성 자동 단련기, 쾌남 오케이, 에너지 박스, 바이오포텐져등 성놀이 기구에 대한 광고가 전혀 새롭지 않다. 그러나 이처럼 한결같이 끝내준다는 섹스 보조기구는 진공 발기 유발기구와 유사한 제품을 제외하곤 단 한 종류도 의학적 검증을 받은 바 없다.

하지만 섹스에 대한 남자들의 관심이 어디 의학적 근거를 따질 겨를이 있겠는가? 먹고살기에 급급하던 옛 시절에도 사내 구실엔 항시 최고의 강세를 주었잖은가?. 성감도를 크게 강화시켜 여성에게 숨넘어가는 쾌감을 준다는 실리콘 링, 핫밴드, 러브 브러쉬, 하니봉, 롱타임등. 듣기만 해도 꿈틀거릴 것 같은 선정적 이름의 기구들이 자꾸만 남자들의 솔깃한 관심을 졸라대고 있다.

더구나 개발자들이 30대 가정 주부나 미용사, 택시기사 출신 여자, 즉 실 수익자들이 만들었다고 더더욱 법석이다. 의학적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남녀 성기에 손상을 초래하여 섹스를 기피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은데도 성놀이 기구에 대한 내밀적 호기심은 끊이질 않는다. 보건 복지부에선 의료용구가 아니라 공산품으로 판매되고 있어 행정적으로 규제할 수가 없다는 입장이고 설사 약사법상 문제가 있다해도 사법권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수수방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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