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에 공개적으로 대든 시진핑 최측근…'노점경제'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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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주도로 최근 중국 전역에서 일고 있는 ‘노점(地攤) 경제’ 활성화 바람에 베이징시가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서 주목된다. 베이징 시가 노점상을 엄격하게 단속하겠다며 엇박자를 내는 것이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 1일 산둥성 옌타이의 한 시장을 방문해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리 총리는 코로나로 위기에 처한 서민의 삶을 위해 노점 경제 허용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 1일 산둥성 옌타이의 한 시장을 방문해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리 총리는 코로나로 위기에 처한 서민의 삶을 위해 노점 경제 허용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노점 경제는 쉽게 말해 도시에서 불법으로 도로를 점령하고 물건을 파는 노점을 허용하는 경제 정책을 일컫는다. 1970년대 말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한 이후 처음 등장했다. 78년 개최된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는 당시 중국의 국민경제가 거의 붕괴했다고 밝혔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부인인 장칭(江靑) 등 4인방이 74년부터 76년까지 국정을 농단한 결과 나라 살림이 거덜 났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구정책 실패로 중국은 49~79년 사이 사람이 무려 4억 3000만 명이나 늘었다.

이렇다 할 자본이나 기술 없이 저소득 계층이 쉽게 창업할 수 있는 노점 경제 바람이 중국에서 불고 있다. 리커창 총리는 노점 경제를 실업자 해소 대책의 하나로 본다. [중국 바이두 캡처]

이렇다 할 자본이나 기술 없이 저소득 계층이 쉽게 창업할 수 있는 노점 경제 바람이 중국에서 불고 있다. 리커창 총리는 노점 경제를 실업자 해소 대책의 하나로 본다. [중국 바이두 캡처]

또 문혁(文革) 기간 농촌으로 보내졌던 도시의 지식 청년이 대거 돌아왔다. 중국의 각 도시가 받는 취업 압력이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이때 나온 게 노점 경제다. ‘거리의 이발사’ 등장은 노점 경제의 한 예다.
중국 농업기업의 선두주자인 신희망(新希望)그룹 회장 류융하오(劉永好)가 바로 노점 경제로 일어선 대표적 인물이기도 하다. 세계의 모든 부품을 공급하는 저장(浙江)성 이우(義烏)시의 발전도 노점 경제에서 시작했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달 28일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자회견에서 노점 경제를 강조한 이후 중국 곳곳에서 길거리 가게 창업 열풍이 불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달 28일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자회견에서 노점 경제를 강조한 이후 중국 곳곳에서 길거리 가게 창업 열풍이 불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노점 경제는 중국의 부상에 따라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97년 베이징이 도시환경 정비에 나서면서다. 2002년엔 노점상에 대한 행정처벌을 강화하며 사실상 중국 전역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한데 전인대 행사가 열리던 지난달 27일 중국의 이데올로기 담당 부서인 중국 공산당 중앙정신문명건설판공실이 지침을 발표했다. 올해는 전국의 문명도시를 측정할 때 도로점령 경영이나 길거리 경제 등을 측정 지표로 삼지 않겠다는 것이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이달 초 산둥성 시찰에 나서 생산 활동을 독려하고 있다. 리 총리는 최근 매달 1000위안 수입의 중국인이 6억 명에 이른다며 아직 팍팍한 삶을 사는 서민이 많다는 걸 강조하고 있다. [중국정부망 캡처]

리커창 중국 총리가 이달 초 산둥성 시찰에 나서 생산 활동을 독려하고 있다. 리 총리는 최근 매달 1000위안 수입의 중국인이 6억 명에 이른다며 아직 팍팍한 삶을 사는 서민이 많다는 걸 강조하고 있다. [중국정부망 캡처]

이튿날인 28일 리커창 총리의 기자회견에서 방침은 더욱 분명해졌다. 리 총리는 “현재 중국엔 한 달 수입이 1000위안(약 17만원) 이하인 사람이 6억 명이나 된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말했다.
리 총리는 “그런데 중국 서부의 한 도시는 3만 6000여 개의 이동 노점을 설치했고 이로 인해 하룻밤에 10만 명의 취업자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쓰촨(四川)성청두(成都)가 코로나 타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난 3월부터 시행 중인 노점 경제를 칭찬한 것이다.

중국 쓰촨성 청두에선 지난 3월부터 일정 구역에서의 노점을 허용해 이제까지 약 1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 중신사 캡처]

중국 쓰촨성 청두에선 지난 3월부터 일정 구역에서의 노점을 허용해 이제까지 약 1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 중신사 캡처]

노점 경제는 또 리 총리가 전인대 개막일인 22일 밝힌 ‘정부업무보고’엔 없었는데 28일 폐막 때는 들어갔다. ‘정부업무보고’ 수정안에 “합리적으로 이동 노점경영 장소를 설정한다”는 문구가 삽입됐다. 노점 경제가 전인대 대표의 건의를 받아 삽입됐다는 이야기다.
리 총리는 전인대 직후인 지난 1일엔 산둥(山東)성 옌타이(烟台) 시찰에 나서 “노점 경제가 일자리의 중요 근원”이라며 “첨단 산업과 함께 중국 경제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 1일 산둥성을 시찰한 자리에서 좌담회를 열고 코로나로 심대한 타격을 받은 민생을 살리기 위해선 노점 경제도 허용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 1일 산둥성을 시찰한 자리에서 좌담회를 열고 코로나로 심대한 타격을 받은 민생을 살리기 위해선 노점 경제도 허용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이후 지난 며칠 사이 중국엔 그야말로 노점 경제 열풍이 일고 있다. “월급이 8000위안 안 되면 노점상 하는 게 낫다. 외지서 10년 일해도 빈손인데 노점상 3년 하면 부자 된다. 일거리 찾기 어려운데 노점상 하자”와 같은 목소리가 중국 인터넷 공간을 채우고 있다.
이에 대한 토론 클릭만 10억회가 넘을 정도다. 이미 중국 전역의 27개 지역에 노점 허용 구간이 설정되는 등 불이 붙고 있다. 노점 경제의 가장 큰 장점은 자본과 특별한 기술이 없는 저소득 계층이 거리에서 쉽게 호구지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 산시성 웨이난시의 빈허대로에 들어선 노점상들. 지난 5월 29일의 모습으로 리커창 총리가 5월 28일 노점 경제를 강조한 이후 재빨리 행동에 들어갔다. [중국 웨이난일보망 캡처]

중국 산시성 웨이난시의 빈허대로에 들어선 노점상들. 지난 5월 29일의 모습으로 리커창 총리가 5월 28일 노점 경제를 강조한 이후 재빨리 행동에 들어갔다. [중국 웨이난일보망 캡처]

리 총리가 정부 차원에서 이를 추진하는 건 코로나로 인한 올해 중국 경제 상황이 그만큼 나쁘다는 걸 방증한다. 올해는 중국의 경제성장률 목표치도 제시하지 못했다.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를 계획하지만, 이는 대기업 몫이다.
서민의 생계를 위해 개혁·개방 시기 호구지책을 재도입한 것이다. 한데 베이징시가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섰다. 6일 베이징시 당기관지인 ‘베이징일보(北京日報)’가 노점 경제는 베이징에 적합하지 않다는 칼럼을 게재한 것이다.

중국 구이저우성의 차오자완 야채 도매시장 옆에도 노점상이 생겼다. 한데 보호비 명목으로 자릿세를 뜯는 사람이 벌써부터 생겨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 구이저우성의 차오자완 야채 도매시장 옆에도 노점상이 생겼다. 한데 보호비 명목으로 자릿세를 뜯는 사람이 벌써부터 생겨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도시의 발전이 맹목적인 바람을 따라서는 안 된다며 베이징은 국가의 수도로 국가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곳이니만큼 환경정비가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구시보(環球時報)도 “아무리 좋은 정책도 정확하게 추진해야 한다’며 베이징시 입장을 거들었다.
베이징은 2017년 11월 19명의 사망자를 낸 화재 사건 이후 대대적으로 도시 정비에 나선 적이 있다. 당시 무허가 건물에 거주하던 저소득 계층을 베이징에서 무자비하게 내쫓아 원성이 높았다.

차이치 베이징 당서기는 지난 2017년 11월 베이징 저소득 계층의 집단 거주지역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을 계기로 베이징 도시 정비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리커창 총리가 주도하는 노점 경제에 반대 입장이라는 소문이 흘러나온다. [중국 바이두 캡처]

차이치 베이징 당서기는 지난 2017년 11월 베이징 저소득 계층의 집단 거주지역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을 계기로 베이징 도시 정비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리커창 총리가 주도하는 노점 경제에 반대 입장이라는 소문이 흘러나온다. [중국 바이두 캡처]

배후엔 베이징 인구를 2300만 이하로 유지하라는 차이치(蔡奇) 베이징 당서기의 강력한 주문이 있었다. 베이징시는 이제까지 큰 대가를 치르고 어렵게 정비한 환경을 노점 경제로 허물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노점 경제가 막무가내 쓰레기 배출 등 환경을 악화시키고 품질 낮은 제품 판매로 분규를 야기하며 도로를 무단 점용해 화재 발생 시 커다란 장애가 되는 등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지난달 말과 이달 초 잇따라 산둥성의 곳곳을 돌며 경제 회복을 역설하고 있다. 최근엔 개혁개방 시기 유행했던 노점 경제가 중국 경제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리커창 중국 총리는 지난달 말과 이달 초 잇따라 산둥성의 곳곳을 돌며 경제 회복을 역설하고 있다. 최근엔 개혁개방 시기 유행했던 노점 경제가 중국 경제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리 총리는 당장 먹고사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인데 반해 차이 서기는 노점 경제 불허 방침을 고수 중이다. 차이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측근 중 측근이다. 그러다 보니 베이징에선 현재 노점상과 단속반의 숨바꼭질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리 총리 주도 중국 전역에 ‘노점 경제’ #쑥대밭 된 민생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 #쓰촨성 청두에선 일자리 10만 개 창출 #베이징은 '도시정비' 내세워 단속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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