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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존스 논란에 “코로나 행운”발언도 구설...BTS믹스테이프 잔혹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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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4년 만에 두 번째 믹스테이프 ‘D-2’를 공개한 방탄소년단 슈가.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4년 만에 두 번째 믹스테이프 ‘D-2’를 공개한 방탄소년단 슈가.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탄소년단(BTS) 슈가의 믹스테이프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어거스트 디(Agust D)라는 활동명으로 내놓은 두 번째 믹스테이프 ‘D-2’는 지난달 22일 발매 직후 80개 국가 및 지역 아이튠스 ‘톱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지만, 수록곡 ‘어떻게 생각해?’에 미국 사이비 종교 교주 짐 존스의 연설이 사용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문제가 됐다.

슈가 신곡 美 사이비교주 음성 사용 논란 #“코로나 덕에 작업 마쳐” 발언도 구설수 #英 앨범 차트 7위 등 솔로 최고 기록 빛바래 #RM “넌 최고의 여자, 갑질” 가사도 문제돼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31일 “해당 곡을 작업한 프로듀서가 연설자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샘플을 선정했고, 적정성 확인 절차를 거쳤으나 부적절한 샘플임을 알지 못했다”며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2016년 8월 첫 믹스테이프 발매 이후 약 4년간 준비한 작업물로 수록곡 10곡을 전부 작사ㆍ작곡한 슈가가 어떻게 샘플링에 사용된 녹음 파일 내용을 모를 수 있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비판·풍자 명확했다면 문제 안 됐을 것”

문제가 된 부분은 1950년대 미국에서 인민사원을 세운 짐 존스가 77년 연설한 “당신은 죽더라도 살 것이다. 살아서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구절로, 방탄소년단이 그동안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 등을 통해 설파해온 메시지와 정반대다. 짐 존스가 이듬해 11월 자신을 따라 남미 가이아나로 이주한 신도들에 음독자살을 강요해 9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은 ‘존스타운 대학살’이라 불릴 정도.

‘D-2’ 커버아트.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D-2’ 커버아트.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한국 조지메이슨대 이규탁 교수는 “힙합 신에서 주로 제작돼온 믹스테이프 특성상 저작권이나 심의 및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편”이라며 “비판이나 풍자의 의도가 명확했다면 되려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8년 미국 힙합 밴드 브록햄튼이 짐 존스의 음성을 삽입해 만든 ‘1998 트루먼’이 자유가 제한된 사회를 비판한 것과 달리 ‘어떻게 생각해?’는 아이돌 음악을 무시하는 안티를 향한 질문이 노랫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결국 해당 부분을 삭제하고 재발매됐지만 지난달 29일 라이브 방송 도중 나온 슈가의 발언도 함께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 믹스테이프를 두고 “코로나가 가져다준 행운” “코로나 때문이 아닌 코로나 덕분”이라고 표현한 것. 당초 지난 4월 시작 예정이었던 월드투어가 예정대로 진행됐으면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취지였지만, 전 세계적으로 사망자가 수십만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타이틀곡 ‘대취타’ 뮤직비디오.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타이틀곡 ‘대취타’ 뮤직비디오.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한국 솔로 가수 최초로 ‘D-2’가 영국 오피셜 앨범 차트 ‘톱 100’ 7위에 오르고, 타이틀곡 ‘대취타’는 싱글 차트 68위에 오른 기록도 무색해졌다. ‘대취타’는 궁중 행진음악인 대취타를 샘플링하고 조선 환도로 검무를 추는 사극풍의 뮤직비디오로 화제를 모았으나 논란에 가려 음악적 성취를 인정받기 어려워진 탓이다.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은 아직 발표 전이지만 2018년 3월 제이홉의 ‘호프 월드’ 38위, 그해 10월 RM의 ‘모노’ 26위에 이어 같은 팀 멤버들이 차례로 한국 솔로 가수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모습이 예정된 터였다.

“믹스테이프, 소수 팬들만 듣던 때와 달라”

방탄소년단을 필두로 몬스타엑스ㆍ스트레이키즈 등 K팝 아이돌 그룹 전반으로 번진 믹스테이프 열풍도 한풀 꺾일 것으로 보인다. 비상업적 목적으로 제작해 무료로 배포하는 믹스테이프는 기존 팀 활동과 별개로 래퍼로서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졌지만, 정제되지 않은 표현으로 잇달아 구설에 오르면서 득보다 실이 큰 상황에 처했다. 그동안 다른 그룹들이 멤버별 솔로 앨범을 발매해 추가 수익을 거둔 것과 달리, 방탄소년단은 믹스테이프로 솔로 활동을 대체해 음악적 역량을 발휘하는 데 집중해 왔다.

2015년 공개한 방탄소년단 RM 믹스테이프 수록곡 ‘농담’ 뮤직비디오.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2015년 공개한 방탄소년단 RM 믹스테이프 수록곡 ‘농담’ 뮤직비디오.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앞서 발표한 방탄소년단 정규 1집 수록곡 ‘호르몬전쟁’(2014), 랩몬스터(RM) 믹스테이프 수록곡 ‘농담’(2015) 등은 여성혐오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여자는 최고의 선물이야” “그래 넌 최고의 여자 갑질” 등 부적절한 표현이 연이어 등장한 것. 이에 빅히트 측은 2016년 7월 “창작 의도와는 관계없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고 불편함을 느끼신 모든 분께 죄송하다”며 “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향후 콘텐트 제작에 있어 좀 더 신중하게 노력하며 조언에 귀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팬들과 적극적인 소통은 방탄소년단의 성장 동력이 되어주기도 했다. RM은 이후 미국 작가 토니 포터가 쓴 페미니즘 도서 『맨박스』가 침대 머리맡에 놓인 방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고, 신곡 발표를 앞두고 여성학 교수를 찾아가 가사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빅히트는 이번에도 “사회, 문화, 역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내용을 확인하고 있으나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대응하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경험하고 있다”며 “이번 사례를 교훈 삼아 모든 제작 과정을 더욱 면밀히 점검하겠다”고 덧붙였다.

과거 믹스테이프가 시중에 유통되지 않은 것과 달리 스포티파이ㆍ사운드클라우드 등 대형 음악 플랫폼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된 만큼 기존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는 “아이돌 출신 래퍼의 경우 기존과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비속어나 욕설을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플랫폼을 활용해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좋지만 기존 팬덤과 대중의 감수성을 두루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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