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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47만개 증발…그림자 실업 덮친다, 고용재난 공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용 충격을 넘어 고용 재난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난달 일자리 47만 여개가 사라졌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후 21년 만에 닥친 최악의 상황이다. 앞으로는 더 문제다. 4월 비경제활동인구는 83만명 급증했다. 역대 최대다. 코로나19로 일자리가 사라지자 구직 자체를 포기한 사람이 확 늘어나면서다. 이대로면 전 국민 고용보험은 커녕 당장 실업급여 줄 돈 마련도 벅찰 판이다.

외환위기 이래 최악의 고용지표가 발표된 13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한 시민이 실업급여 상담을 받고 있다. 뉴스1

외환위기 이래 최악의 고용지표가 발표된 13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한 시민이 실업급여 상담을 받고 있다. 뉴스1

 통계청은 ‘4월 고용 동향’을 통해 지난달 취업자 수는 2656만2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47만6000명 줄었다고 13일 밝혔다. 99년 2월(-65만8000명) 이후 21년2개월 만에 최대 감소 폭이다. '고용 쇼크'로 불렸던 3월(-19만5000명)은 비할 바가 못된다.

서비스업에선 위기 강도가 세지고, 제조업에선 일자리 감소가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달에도 숙박ㆍ음식점업(-21만2000명), 교육서비스업(-13만 명), 도소매업(-12만3000명) 취업자 수는 급감했다. 제조업 일자리도 4만4000개 감소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통해 55만개 플러스 알파(α)의 일자리 신속 공급 방안을 집중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10년간 취업자 수 증감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최근 10년간 취업자 수 증감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고용 재난은 약한 고리부터 파고 들고 있다. 경기도 구리시에서 음료 유통업체를 운영하는 안모(47)씨는 지난달 하나뿐이던 직원 1명을 해고했다. 코로나19가 번지면서 주문이 급감했고 매출도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안씨는 아예 사업을 접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그는 “10년 가까이 같이 일한 가족 같은 직원이지만, 진짜 가족에게 줄 돈도 없다”며 “고용유지지원금이라는 제도가 있다지만 사업 자체를 이제 그만해야 할 판이라 신청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비정규직에게는 더 가혹했다. 정규직에 해당하는 상용근로자 수는 지난달에 오히려 40만 명 늘었다. 반면 임시근로자(-58만7000명)와 일용근로자(-19만5000명) 수는 급감했다. 청년층은 앞 길이 막막하다. 지난달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은 9.3%로 전체 평균(4.2%)의 2배를 넘었다. 청년층 취업자 감소 인원은 24만5000명으로 전체 취업자 감소 폭(47만6000명)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취업 준비생 여모(26)씨는 “취업은커녕 인턴 자리도 잡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아르바이트라도 하려고 매일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들어가 보지만 새로운 구직 공고가 뜨지 않아 며칠째 같은 공고, 같은 페이지다”라고 말했다.

13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한 시민이 일자리정보게시판을 지나고 있다. 뉴스1

13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한 시민이 일자리정보게시판을 지나고 있다. 뉴스1

 공식 고용 통계에 잡히지 않는 ‘그림자 실업’ 까지 감안하면 드러난 수치는 빙산의 일각이다. 지난달 실업자 수는 117만2000명, 실업률은 4.2%로 집계됐다. 전년 동월 대비 0.2%포인트 감소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실업률이 오히려 개선되는 기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실업 통계의 맹점 탓이다.일자리가 없다 싶어 구직 활동에 나서지 않는 사람은 실업 통계에 들지 않는다.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다. 어쩔 수 없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가사ㆍ육아를 하거나 취업ㆍ진학 준비를 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위기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비경제활동인구는 큰 변동이 없었다. 지난 2월(-2만6000명)까지는 오히려 감소세였다. 그러나 3월 들어 비경제활동인구 증가 폭은 51만6000명으로 뛰어올랐고, 지난달 83만1000명으로 급증했다. 2000년 6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다.

통계청 분석에 따르면 지난달 늘어난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연로(4만1000명), 심신 장애(1만4000명) 같이 정말 일을 하기 힘든 상황을 이유로 밝힌 사람은 5만여 명에 불과하다. 상당수가 사실상 실업 상태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특별한 사유 없이 ‘쉬었음’이라고 답한 사람(43만7000명)이 비경제활동인구 증가 인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가사·육아 등을 이유로 든 경우도 많았다. 은순현 통계청 사회통계국장은 “임시직과 여성, 20대가 비경제활동으로 유입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상 최대 기록한 체감실업률.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사상 최대 기록한 체감실업률.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고용 위기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 국민 고용보험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취업자 감소로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줄고 있는데 실업급여(구직급여) 지급액 규모는 커지고 있는 탓이다. 고용보험기금 감소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미 시작됐다. 10조2544억원으로 최고점을 찍은 고용보험기금은 지난해 7조3500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이 같은 추세는 고용 한파 탓에 더욱 악화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4월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1377만5000명으로 1년 전보다 16만3000명(1.2%) 증가하는 데 그쳤다. 98년 4월 이후 증가 폭이 가장 낮다. 특히 취업난이 심화하며 15~29세 청년층 고용보험 가입자는 전년 동월보다 4만900명, 30대 가입자는 2만8600명 줄었다. 반면 구직급여 지급액은 9933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결국 양질의 일자리가 유지돼야 고용보험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코로나19 이전부터 정부는 재정을 투입한 노인 일자리 등으로 고용을 견인해 왔는데, 이보다는 민간이 고용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노동 경직성을 개선하고 규제를 합리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한국판 뉴딜’의 한 축으로 ‘그린 뉴딜’을 제시했다. 산업통상자원부ㆍ중소벤처기업부ㆍ국토교통부ㆍ환경부로부터 합동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다. 문 대통령은 “그린 뉴딜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고 국제사회가 그린 뉴딜에 대한 한국의 적극적 역할을 원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스마트시티, 도시 행정 스마트화 등을 예시로 들었다.

세종=조현숙ㆍ허정원ㆍ임성빈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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