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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 성폭행 뒤 살해한 13세 형사처벌 안 받는다, 들끓는 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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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중국에서도 형사 책임을 지는 미성년자의 나이를 현행 14세에서 13세로 낮추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13세 소년, 10세 소녀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사건 #中 여론 충격과 분노..."형사책임 연령 낮춰야"

11일 중화망 등에 따르면 중국 광둥성 변호사 협회 회장인 샤오셩팡 변호사는 현행 형법 17조를 수정해 중국 미성년 형사 책임연령을 14세에서 13세로 낮추자고 제안했다. 그는 "과거보다 미성년자들이 훨씬 조숙해진 데다 최근 범죄의 저(低)연령화가 일어나고 있어 형사 책임 연령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21일 중국 최고 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회의도 '미성년자 보호에 관한 법률과 청소년 범죄 예방에 관한 법률'의 개정 초안을 검토했다.

법 개정 검토는 지난해 벌어진 한 사건이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중국 다롄시에서 13세 소년이 10세 소녀를 성폭행한 뒤 흉기로 7차례 찔러 살해한 사건이다. 피해자의 부모는 미술학원에 간 딸이 돌아오지 않자 아이를 찾아 나섰다가 집에서 100m 떨어진 덤불에서 시신을 발견했다. 소년은 소녀를 살해한 뒤 시신을 숲에 유기했다는 사실을 자백했다.

지난해 중국에서 13세 소년이 10세 소녀를 살해했으나 소년의 나이가 14세 이하여서 가벼운 처벌만을 받아 중국인들이 분노했다. 올해 이와 관련해 형사책임연령을 14세에서 13세로 낮춰야 한다는 제안이 광둥성 변호사협회를 통해 나왔다. 사진은 희생된 10세 소녀의 영정과 그를 추모하기 위한 꽃다발. [출처: 웨이보]

지난해 중국에서 13세 소년이 10세 소녀를 살해했으나 소년의 나이가 14세 이하여서 가벼운 처벌만을 받아 중국인들이 분노했다. 올해 이와 관련해 형사책임연령을 14세에서 13세로 낮춰야 한다는 제안이 광둥성 변호사협회를 통해 나왔다. 사진은 희생된 10세 소녀의 영정과 그를 추모하기 위한 꽃다발. [출처: 웨이보]

하지만 소년은 정식 형사 처벌을 받는 대신 3년간 소년 재활시설에 수감되는 처분을 받았다. 형사 책임을 지는 나이인 만 14세가 되지 않아서다.  중국 형법상 14~18세는 살인·강간·마약 밀매·강도·방화 등 중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형사책임을 진다. 그러나 14세 미만은 기소도 처벌도 받지 않는다. 그나마 교정 시설에 보내지는 경우도 드물다. CNN은 "심지어 소년범이 부모에게 그냥 돌려보내지는 경우도 흔하다"고 보도했다.

중국에서 이웃 13세 소년에게 희생된 10세 소녀의 유품. [신경보=연합뉴스]

중국에서 이웃 13세 소년에게 희생된 10세 소녀의 유품. [신경보=연합뉴스]

중국인들은 충격과 분노에 빠졌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는 "소녀는 죽었지만 그를 죽인 악마는 보호받고 있다"면서 "가해자가 3년 뒤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 분노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또 다른 웨이보 사용자는 "살인자가 10살인지 70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썼다. "나이가 범죄의 구실이 되어선 안 된다", "악랄한 범죄에는 나이 제한이 없어야 한다"는 반응도 빗발쳤다.

12세가 어머니 살해하고도 9일 만에 복학 

비슷한 사건도 이어졌다. 지난해 3월 장쑤성에서 13세 소년이 말다툼 끝에 어머니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금됐다. 그러나 경찰은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그를 집에 돌려보냈다. 지난해 12월 후난성에서는 12세 소년이 어머니를 흉기로 숨지게 했지만, 9일 만에 복학해 논란이 됐다. 같은 달 후난성의 13세 소년은 경찰에 부모를 망치로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그런데도 그는 석방돼 복학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형사 책임연령 제각각…싱가포르 7세

다른 나라에 비해 중국에서 형사 책임을 지는 연령이 높다는 지적은 계속 있었다. 중화망에 따르면 각국의 최저 형사 책임연령은 인도·싱가포르·브루나이·말라위가 7세, 잠비아·케냐는 8살이다. 멕시코·필리핀은 9세, 영국은 10세, 터키·네덜란드는 12세, 이스라엘·프랑스는 13세다. 미국은 주마다 차이가 있다. 전미 아동 보호센터에 따르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는 6세, 다른 19개 주는 7~11세다.

사진은 2019년 인도에서 성범죄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촛불에 불을 밝히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사진은 2019년 인도에서 성범죄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촛불에 불을 밝히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한국에서도 최근 교육부가 촉법소년(범법행위를 한 미성년자) 연령을 만 13세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제4차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5개년 기본계획(2020~2024년)’을 발표한 바 있다. 한국에서 죄를 지어도 벌하지 않는 형사미성년자 기준은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만 14세였다. 만 10~14세인 촉법소년은 구치소가 아닌 소년심사분류 원에 보내지고, 법원에서 처벌 대신 보호처분을 받는다.

11일 이정옥 여성가족부(여가부) 장관은 '포용 국가 청소년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한국은 촉법소년의 연령이 조금 더 보호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자기 책임제를 강화하는 영미 쪽과 같이 만 13세로 하향하는 안에 대해 법무부와 지속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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