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흐윽…안 되겠다” 이천 일 나간 남편의 마지막 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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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양반은 못 되겠네. 자기 이야기하는 줄 알고 바로 전화하네. 여보쇼?”

결혼 1년된 남편, 출구 찾다 전화 #“일손 없다” 동료 부탁에 공사 나가 #현장서 통화 녹음된 휴대전화 발견 #아내 “통화서 화재 경고음 안들려”

“자기야! 어헉…흐윽…안 되겠다.”

지난달 29일 오후 1시37분, 박모씨는 일터에 나간 남편 김모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남편은 이해하기 힘든 몇 마디 말만 남긴 채 금방 전화를 끊었다. 박씨는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가족 행사가 있어 친정 식구들이 모두 모인 날, 김씨는 “일손이 너무 없다. 제발 도와달라”는 동료의 부탁을 받고 어쩔 수 없이 일하러 나갔다.

김씨는 전날까지도 “사위가 행사 자리에 없을 것 같아 죄송하네”라고 말했다. 박씨가 “남편이 친정 식구들과 통화라도 하려고 전화한 줄 알았다”고 말한 이유다. 그 통화가 남편과의 ‘마지막 통화’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날 남편 김씨가 일하러 간 일터는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였다. 대형 화재 참사로 38명이 귀한 목숨을 잃은 그 현장에서 김씨도 세상을 떠났다. 작은 개인사업체를 운영했던 김씨는 동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딱 이틀만 현장에서 일하기로 했는데, 하필 이틀째 되는 날 사고가 났다. 지상 2층에서 작업한 것으로 알려진 김씨는 화재 발생 이후 5분 정도 탈출구를 찾다 여의치 않자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3일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5월은 김씨와 박씨의 결혼기념일이 있는 달이다. 두 사람은 지난해 5월 결혼한 신혼부부다. 박씨의 언니는 “이제 겨우 결혼한 지 1년밖에 안 됐는데…정말 따듯하고 자상한 제부였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해 힘들어하는 남편의 목소리를 박씨가 제대로 들은 건 현장 수색에서 남편의 휴대전화가 발견된 이후다. 사고 당일 김씨의 목소리는 박씨의 휴대전화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아내가 ‘장난전화’라고 생각했던 이유다. 하지만 자동으로 통화 녹음이 되는 남편의 휴대전화에는 사고 당시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녹음돼 있었다.

박씨는 “(녹음된 목소리를) 딱 한 번밖에 듣지 않았다. 더 이상은 도저히 들을 수가 없었다”며 울먹였다. 그는 “가지 말라고, 가족 행사가 있으니까 오늘은 하루 쉬라고 더 붙잡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너무 후회된다”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박씨가 공개한 녹음파일에는 화재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경고음 같은 소리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 따르면 화재 유도등과 같은 소방시설도 전무했다고 한다.

박씨의 언니는 “제부는 몸이 날래고 빠른 사람이라 조금이라도 대피할 수 있는 방안이 있었다면 그걸 찾아냈을 것”이라며 “당시 현장에는 제부를 도와줄 그 어떤 것도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남편이 정확히 2층의 어느 위치에서 일하다 사망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한다”며 “불이 왜 난 것인지, 도대체 어떤 게 문제였는지 명확하게 밝혀져서 다시는 남편과 같은 억울한 죽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눈물을 훔쳤다.

이천 참사 유족들은 이날 현장을 방문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과거에도 이런 일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정부는 사과했지만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이제는 정말로 이런 참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대표는 “정부와 상의해 제도적·법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를 하겠다”고 답했다.

이천=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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