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실리콘밸리,판교]OECD박차고 나가 만든 정책스타트업

중앙일보

입력 2020.04.11 08:00

업데이트 2020.04.18 16:18

2011년. 38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합격했다. 한국인으로 12년 만에 OECD 사무국 정직원이 됐다. OECD에서 8년. G20, G7 등 선진국이 모여 글로벌 정책을 만드는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봤다. 배우는 건 많았다. 하지만 내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결핍이 있었다. 결국 모두가 선망하는 국제기구를 스스로 박차고 나왔다.

국제기구 10년 근무한 정지은 대표
총선 후보 SNS까지 한눈에 '총선.kr'
5월엔, 한국 코로나 정책 종합 사이트

지난해 9월 정책 스타트업 '코딧(Codit)'을 창업한 정지은(36) 대표 이야기다. 유네스코와 OECD 등 국제기구에서만 10년 있었던 그는 왜 국제기구를 떠나 창업 불모지인 폴리테크(정치·정책 분야에 기술을 접목)에 뛰어들었을까. 지난 6일 정 대표를 중앙일보에서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책스타트업 코딧의 정지은(오른쪽) 대표와 이희준(39) 최고기술책임자(CTO)가 6일 중앙일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정원엽 기자

정책스타트업 코딧의 정지은(오른쪽) 대표와 이희준(39) 최고기술책임자(CTO)가 6일 중앙일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정원엽 기자

정책 스타트업, 낯선 폴리테크 

정책 스타트업이라는 말 자체가 낯선데 어떤 분야인가요?
"정책 하면 '감시'를 떠올리고 시민단체나 정당의 일이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 산업 분야에도 정책이 중요해요.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할 때 각종 규제·정책을 고려했듯이, 기업은 정부 정책·입법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수에요. 큰 기업이면 정책 매니저를 두거나 로펌·컨설팅 업체를 통해 정책 정보를 모으는데, 작은 기업은 정책을 몰라 회사가 망하는 경우도 있어요. 저희는 개인이나 기업이 투명하고 쉽게 정책에 접근하게 도와주는 스타트업이에요"
정책이라고 하면 너무 광범위 한거 같습니다. 어느 부분에 집중하나요?
"법안이 핵심입니다. 사회적 이슈가 법이 되고, 법에 맞춰 룰이 생기거든요. 어떤 법이 추진되고 있는지, 통과는 될지, 국회의원의 성향은 어떤지 등 여러 정보를 계속 모으고 정리해요. 기업 입장에선 이런 정책 정보가 있으면 불확실성을 줄이고 사업에 전념할 수 있게 되죠"  
정책스타트업 코딧의 정지은 대표. 정원엽 기자

정책스타트업 코딧의 정지은 대표. 정원엽 기자

첫 결과물, '총선.kr'

총선후보자 정보사이트 '총선.kr'을 지난달 28일 선보였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죠?
"정책을 따라가기 위해선 국회의원을 알아야죠. 의원정보를 수집하며 자연스레 선거 정보도 수집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별개 프로젝트로 '총선.kr'를 만들었어요. 깜깜이 선거 좀 그만하자는 생각에 3주간 매달려 사이트를 열었죠"
선거 정보 제공하는 곳이 많은데 특별한 점이 있을까요?
"자기 선거구를 모르는 사람도 많아요. 그래서 주소만 넣어도 선거구를 찾아 후보를 볼 수 있게 했죠. 후보 기초정보 외에 최근 SNS활동과 언급된 뉴스까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요. 공약을 보여주는 데도 공을 들였어요. 정당별 주요 10대 공약 등을 정리했죠."
총선.kr 에서는 정당별 공약 및 주제별 주요 공약을 확인할 수 있다.

총선.kr 에서는 정당별 공약 및 주제별 주요 공약을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로 선거 관심도가 낮은데 반응은 어떤가요? 
"약 2만명이 접속(10일 12시 기준)했어요.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연령대는 18~24세, 다음이 25~34세였습니다. 밀레니얼이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하지만 필요한 정보를 보기 쉽게 제공하면 다 찾아봐요. 총선 후엔 당선자 공약 이행과 의정활동을 추적할 계획이에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페이지도 선보인다고 들었습니다.
"전 세계가 한국 정부의 코로나 대응을 주목하고 있어요. 하지만 실제 무슨 정책이 있는지는 정보가 분산돼서 모르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별 재난지원금 등 한국의 코로나 정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이트를 준비 중이에요. 5월 중에 한국어와 영어로 선보일 계획입니다" 

'디코드폴리시', 한국의 '피스컬노트'?

사실 코딧이 가장 공을 들이는 건 '디코드 폴리시'라는 정책 플랫폼이다. 입법정보, 의원 정보, 뉴스 등 정책 관련 데이터를 종합해 규제나 정책변화를 추적·예상하는 플랫폼이다. 코딧은 현재 20년 치 의안 정보를 모아 분류했고, 관련 뉴스 등도 8년 치를 모아 분석을 마쳤다. 정 대표는 "'총선.kr'같은 프로젝트나 코로나 정책사이트도 디코드 폴리시로 가는 경로 안에 있다"고 했다. '디코드 폴리시'는 올해 말 출시될 예정이다.

정책스타트 코딧이 올해말 선보일 정책종합 서비스 디코드폴리시.

정책스타트 코딧이 올해말 선보일 정책종합 서비스 디코드폴리시.

미국의 유명 폴리테크 기업 '피스컬노트'와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을 것 같습니다.

"피스컬노트가 정책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건 맞아요. 미국 50개 주 전체의 정책을 모아 인공지능(AI)으로 90% 이상 입법 예측까지 해주잖아요. 저희도 기본 구조는 데이터에 기반해 이슈를 분석하고,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 분석하는 거예요. 근데 구글이 있다고 네이버가 의미가 없는 건 아니잖아요. 미국과는 상황이 다른 한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정책 분야에 특화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구체적으로 어떤 특화된 측면이 있을까요?
"한국 정책 결정 과정은 훨씬 복잡해요. 정당 구도, 사회 이슈, 여론 영향, 국회의원 특성 등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미쳐요. 타다의 경우 AI라고 해도 지금의 결론을 예상하긴 힘들었어요. 특정 국회의원의 발언이나 관련 부처의 의견 등 정책 결정 과정 등 한국의 특수성이 있죠. 맥락을 아는 종합적인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 필요해요. AI 기술에 빅데이터 기술 그리고 정책·입법 분야에서 일했던 분들의 네트워크로 데이터의 부족한 점을 채울 계획입니다"
정책 스타트업 코딧이 준비중인 디코드폴리시의 주요 서비스 내용.

정책 스타트업 코딧이 준비중인 디코드폴리시의 주요 서비스 내용.

기업이 정책 정보를 로비에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큰 기업만 정책 정보에 접근한다면 그럴 수 있죠. 하지만 큰 기업뿐 아니라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까지 정책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면 지금의 불평등한 구조가 오히려 깨질 수 있어요.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게 정책 데이터를 공개할 예정이라 시민영역의 추적·감시가 강화될 수도 있죠"

"정년 보장된 국제기구 보다, 현실 변화 이끄는 게 매력적"

OECD에서 일하다 창업했습니다. 
"OECD서 2013년~2015년까지 불공평을 해결하는 디지털 기술 정책을 다뤘어요. 그때 기술의 가능성에 눈을 떴고, 지금은 그걸 현실에 적용해 가는 게 즐거워요. 국제기구는 변화를 실현하기엔 너무 느렸거든요. OECD 정년보장(테뉴어)을 받은게 아깝기도 했지만, 후회는 없어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OECD에서 배운 건 충분한 정보를 가진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의 결정에 차이가 크다는 점입니다. 정보가 진짜 중요한 거죠. 개인, 기업, 기관 모두가 인폼드 디시즌(informed decision, 충분한 정보를 기반으로 한 결정)할 수 있게 돕는 게 목표에요. 한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유럽의 정책 정보를 포괄하는 플랫폼을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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