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두더지 잡기식 뒷북 방역 이대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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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시가 어제 부랴부랴 룸살롱과 클럽·콜라텍 등 유흥업소 422곳에 대한 영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서울 강남의 한 대형 유흥업소 종업원 한 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게 알려지자 강경 조치를 내린 것이다. 뒷북인 데다 원칙도, 일관성도 없다.

유흥업소 종업원 확진에 뒤늦게 영업정지 #시민의식에만 의지 말고 방역 구멍 없애야

대다수 국민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하며 일상의 불편을 감내하고 있는 와중에 이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이 최소 118명에 달할 만큼 룸살롱이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는 사실이 우선 놀랍다. 밀폐된 실내공간이라 집단감염의 우려가 큰 데도 다른 이에 대한 배려없이 업소에 드나든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와 각 지자체가 언제까지 눈앞의 뻔한 방역 구멍을 방치한 채 요행만 바라다 확진자가 나오면 그제야 ‘두더지 잡기’식으로 대응하는 원칙 없는 방역을 지속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겠다며 초·중·고 개학을 늦추고 종교·실내체육 시설 등에 대해 운영 중단을 권고하는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2주 더 연장 시행하면서도 룸살롱은 물론 주말마다 클럽 등에 마스크도 쓰지 않은 젊은 층이 대거 몰리는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낮에 학교나 직장은 가지 말라면서 밤에 클럽과 룸살롱 가는 건 막지 않았다. 방역 지침을 준수하는지 수시 점검했다지만 “(룸살롱·클럽 등은) 업계 성격상 밀접 접촉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서울시 설명대로 그동안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 게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유흥업소를 매개로 한 확진자와 2차, 3차 감염자까지 나오고 나서야  영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쯤 되면 방역을 운에 맡겼다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말이 없다. 방역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 형평성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서울시는 똑같이 다수가 모이는 환경인데도 확진자가 전혀 나오지 않은 일부 교회엔 일찌감치 집회 금지령을 발동, 현장 예배 자체를 막기도 했다.

이렇게 들쭉날쭉한 방역 행정이 반복되니 적잖은 시민들은 방심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전 국민이 감염의 위험에 노출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실제로 당국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부활절을 앞두고 현장 예배를 하는 교회는 오히려 늘었고, 심지어 한 놀이공원은 학교도 가지 않는 중·고생을 타깃으로 ‘교복 입고 오면 반값 할인’의 이벤트까지 하는 지경이다. 해외 유입 확진자가 급속히 늘고 있는 마당에 유혹을 물리치는 성숙한 시민의식에만 기대는 이런 안이한 대응으로는 수도권의 대규모 집단 감염 사태를 야기할 우려마저 있다. 차라리 미국이나 유럽처럼 단기간이라도 전 사회가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해 더 이상의 악화를 막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