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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예측 불가" 트럼프 변명 뒤집을 국장 '메모' 나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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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개최한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서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을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개최한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서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을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월 말 미국 백악관 고위 참모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미국에서 대규모 인명 피해와 몇조 달러의 경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뉴욕타임스(NYT)가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나바로 국장, 1월말 "코로나 대유행 가능성 #경제손실 6조 달러, 50만명 사망 가능성" 경고 #2월 23일 두번째 메모 , "1억 감염, 120만 사망" #트럼프, "메모 못 봤다. 여전히 그를 신뢰" #NYT "코로나 예측 불가" 트럼프 변명 뒤집는 근거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의 메모는 코로나19 발병을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 회피 발언을 정면으로 뒤집는 증거라고 NYT는 전했다.

나바로 국장은 1월 29일 자 메모에서 “미국 땅에서 코로나19가 완전한 대유행(full-blown pandemic)으로 번질 경우 미국은 무방비로 당할 수 있다”면서 "대규모 인명 피해와 경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가 미국 전역에서 발병하면 최악의 경우 미국인이 50만 명 넘게 숨질 수 있다는 수치도 제시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중국에 대한 여행 금지 조치 등 공격적인 통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적극적인 통제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 미국 경제 손실이 6조 달러(약 7300조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발 입국을 제한할 경우 손실액은 월 29억~346억 달러(약 3조~42조원)로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메모 수신인은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내 고위 관료들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코로나19 백악관 정례 브리핑에서 나바로의 메모를 봤냐는 질문에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누군가 메모에 대해 알려줬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가 당시 가진 느낌이었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메모를 봤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스스로 판단에 따라 중국발 입국을 금지했다. 나도 나바로와 같은 직감을 가졌다"고 말했다.

첫 메모 작성 시점은 미국에서 첫 환자(1월 21일)가 나온 지 8일 뒤였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바이러스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면서 코로나19 확산 가능성과 위험성을 경시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이틀 뒤인 1월 31일에야 중국발 외국인 입국 금지를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개최한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서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 발언을 들으며 웃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개최한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서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 발언을 들으며 웃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나바로 국장은 2월 23일 두 번째 메모를 작성했다고 악시오스는 전했다. 이 메모에서 “코로나19가 완전한 대유행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미국인 1억명이 감염될 수 있고, 이 가운데 120만 명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까지도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의 위험성을 공개적으로 묵살했다. 트럼프는 2월 26일 “미국 확진자가 15명인데, 며칠 후면 제로(0)에 가깝게 줄어들 것”이라면서 “우리는 훌륭하게 해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의 심각성을 깎아내려 대비를 어렵게 했다고 지적하는 기자 질문에 트럼프는 "나는 이 나라의 치어리더다. 혼란과 충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측근인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2월 25일 “바이러스를 통제했다. 경제적인 비극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바로 국장의 메모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거쳐 믹 멀베이니 대통령 비서실장 대행을 포함해 트럼프 행정부 최고위 인사들에게 전달됐다. 하지만 일부 인사들은 나바로 국장이 '중국 매파'라는 점을 들어 그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NYT는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개최한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서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을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개최한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서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을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나바로 국장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국에 대해 가장 강경한 입장을 가진 관료 중 한 명이다. 중국 정부의 태도와 무역 관행에 대한 불신이 깊다. 40여년 동안 미국을 착취해 얻어낸 중국의 부상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고강도 미ㆍ중 무역전쟁을 지지해왔다.

그런 나바로가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중국에 대한 여행 제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트럼프 행정부 고위 인사들은 나바로가 평소 가진 중국에 대한 불신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보고 그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NYT는 ‘중국 여행 금지 조치?’라는 제목의 나바로 메모가 “팬더믹으로 번질 확률이 1% 보다 높다면, 중국에 대한 즉각적인 여행 금지 조치가 확실하고 지배적인 전략”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나바로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다른 조치들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가장 쉬운 통제 방법은 중국 여행을 제한하는 것이며, 최대 12개월 동안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당시로선 상상하기 어려웠던 이 제안을 백악관 관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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