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대가가 ‘볼모’ 신세인가.”
최응식 주한미군 한국인 노조위원장 인터뷰 #"안보가 뒷전으로…안보 공백이 가장 걱정" #"느슨해진 한·미 동맹, 이번 일 우연이 아니다"
한·미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 장기화로 지난 1일부터 강제 휴직 사태를 맞은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조합의 최응식 위원장은 6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현재 자신들의 처지를 이같이 표현했다. “방위비분담금 인상 여부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자신들의 인건비가 한·미 협상 과정에서 애꿎은 죄인이 됐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또 무력함 속에서 한·미동맹 70년 역사상 초유의 균열을 느낀다고도 했다. 안보 공백을 우려해 무임금 노동이라도 하려 했지만 이조차 저지당한 이들 한국인 직원은 요즘 1인 시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지난달 25일 방위비 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삭발까지 한 최 위원장은 7일엔 주한 미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 볼모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 “우리가 급여를 올려달라고 해서 지금 이 사태가 벌어졌나. 한국인 인건비, 미군기지 내 건설 비용, 군수지원비 등 세 가지 항목을 다루는 SMA 협상에서 지금 문제가 되는 건 뒤의 두 개 항목이다. 인건비는 어차피 고정적으로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나가는데 한·미가 줄다리기를 할 사안이 아니다. 한·미가 협상을 진행하는 데 우리는 잘못한 것도 없이 중간에 껴 생존을 걱정하게 됐다.”
노조 측은 한·미가 그동안 인건비 우선 타결에 합의하지 못했다는 점도 자신들의 볼모 신세를 보여주고 있다는 입장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 2월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주한미군 자체 운영유지(O&M) 예산을 전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인건비만이라도 우선 타결하는 방안을 미측에 제안한 바 있다.
주한미군도 지난해 말 한국 정부에 군사건설비와 군수지원비 등을 인건비로 쓰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SMA 협상의 기본 틀이 ‘총액형’이라는 점을 들어 인건비만 따로 빼 합의가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노조 일각에선 양측이 협상에서의 유·불리를 따지느라 합의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무엇이 가장 걱정인가.
- “안보 공백이다. 우리가 임금을 못 받는다고 일을 쉬는 것은 마치 철책선에 있는 군인들이 돈을 못 받는다고 총을 내려놓는 것과 같다. 정전 후 처음 겪는 일이라 임금을 받지 않더라도 업무를 계속하겠다고도 했는데 이게 미국 노동법상 불법이라고 해 일터에서 쫓겨났다.”
최 위원장은 미측이 지금 남겨둔 한국인 필수인력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미측은 무급휴직을 시행하면서 대상이 되는 약 9000명의 한국인 직원 중 절반을 필수직 인력으로 분류해 업무를 지속하도록 했다.
- 필수인력을 남겨뒀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은 피한 것 아닌가.
- “미측이 분류한 필수인력 대부분은 기지 내 의식주, 보건과 관련된 업무 종사자들이다. 작전통제 등 안보 차원에서 필수인력과 비필수 인력을 분류한 게 아니라는 의미다. 주한미군의 불편과 불만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측이 정치적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다.”
- 한국인 직원들의 생계 문제는 어떤가.
-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사는데 벌이가 끊기니 당연히 막막할 수밖에 없다. 대리운전을 시작하거나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직원들도 있다.”
- 노조 차원에서 단체행동 등 대응책이 없나.
- “미국은 소파(SOFA) 노무 조항을 이유로 노동 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단체행동을 하다가는 노조 설립 취소까지 당할 수 있다.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회도 어려워져 1인 시위나 기자회견 정도가 할 수 있는 전부다.”
- 해결책으로 원하는 건 무엇인가.
- “우선 ‘인건비에 방위비 분담금을 100% 활용해야 한다’는 명문 규정을 꼽을 수 있다. 현재 한국인 직원들의 인건비 총액 중 방위비 분담금에서 나온 금액은 약 88% 비율이다. 인건비 지급 원이 방위비에서 모두 나온다는 점이 명확해지면 SMA 협상이 장기화하더라도 ‘선조치·후지급’도 조금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다.”
- 느슨해진 한·미동맹이 이번 무급휴직 사태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 “한·미동맹이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지금 주한미군 주둔 역사상 처음 이런 일이 발생한 걸 그저 우연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최 위원장은 “미국이 견고한 한·미동맹을 넘어 안정된 동북아 질서를 진정 원한다면 한반도에서 기본적인 안보 유지 업무가 중단되지 않도록 즉각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