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느려터져" "직원 게을러터져"···재택 안되는 亞신흥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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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는 가운데 각국 정부가 재택근무를 권고하고 있지만 여러 이유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의 금융지구. 싱가포르 정부는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재택근무와 온라인 학습 등을 전면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의 금융지구. 싱가포르 정부는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재택근무와 온라인 학습 등을 전면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화통신=연합뉴스]

4일 기준 3200여명의 확진자가 나온 필리핀에서는 수도 마닐라를 비롯한 여러 지역이 봉쇄되면서 재택근무가 권고되고 있지만 많은 사업장에서 애를 먹고 있다. '느린 인터넷 속도' 때문이다.

SCMP는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일해야 하는 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많은 기업이 직원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인터넷 속도가 매우 느려 곤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아시아 신흥국 대부분 같은 문제를 겪고 있지만, 글로벌 기업들의 BPO(business process outsourcing·회사의 핵심업무를 제외한 과정을 외부 업체에 맡기는 아웃소싱) 거점인 인도와 필리핀에서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안정적인 인터넷 연결과 빠른 의사소통이 필수적인 산업이라서다. 콜센터 등 BPO 산업은 필리핀 경제의 핵심 산업으로 꼽힌다.

신문은 또 "개인 노트북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도 많지 않은 데다 집에 안정적인 인터넷 환경을 갖춘 이들은 더더욱 없어서, 일을 제대로 끝내기 위해 친구를 찾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라고 보도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재택근무를 권하고 있는 마당에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한 슈퍼마켓 앞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라 띄엄띄엄 줄을 서 있다. [AP=연합뉴스]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한 슈퍼마켓 앞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라 띄엄띄엄 줄을 서 있다. [AP=연합뉴스]

인터넷 속도 문제뿐 아니다. 재택근무하는 직원들을 믿지 못하는 고용주들도 여전히 상당하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유명 어학원에서 일하는 한 교사는 SCMP와의 인터뷰에서 "원격으로 일할 환경이 갖춰져 있지만, 고용주가 직원들이 집에서 일하는 것을 믿지 못해 완전한 재택근무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신문은 "이는 많은 아시아 신흥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고용주와 직원들 간 불신으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업무량이 오히려 훨씬 늘었다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강력한 대책을 내놓은 곳도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최근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인데도 직원들에게 회사 출근을 강요하는 고용주를 처벌할 수 있게 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또 모든 기업이 근로자가 집에서 일할 수 있도록 충분한 설비를 제공하라는 지침도 내렸다. 이런 규정을 위반하는 고용주에게는 최대 1만 싱가포르달러(약 860만원)의 벌금형 혹은 6개월 징역형에 처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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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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