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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반값 될 때 휘발유값 왜 안 내리나” 코로나로 가뜩이나 힘든 소비자 분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여파로 역대급 저(低)유가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국내 소비자는 석유제품 판매가가 떨어지는 반사 이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유가가 떨어진 만큼 주유소 기름값이 따라 내리지 않아서다.

정유사 “세금 많고 원화값 내린 탓” #“2주 시차 발생, 주유 늦춰라” 조언

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20.31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한 달 전인 3월 2일 WTI 유가(배럴당 46.75달러) 대비 절반도 못 미쳤다. 반면 같은 기간 국내 주유소 휘발유값 평균은 ℓ당 1523원에서 1384원으로 9.2% 내리는 데 그쳤다.

국제유가 확 내렸는데, 주유소 기름값은 굼벵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국제유가 확 내렸는데, 주유소 기름값은 굼벵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정제·유통 마진(이익)이 줄자 정유사가 국제유가 하락 속도보다 더디게 국내 판매가를 내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보경 석유시장감시단장은 “정유사는 ‘마진을 줄여도 기름값 인하 폭이 크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소비자가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유업계는 ‘폭리’ 논란에 대해 “한국처럼 기름값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나라도 없는데 기름값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매번 정유사만 몰아붙이는 건 횡포”라는 입장이다. 특히 세금으로 화살을 돌린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국내 기름값의 약 60%가 세금이라 국제유가가 떨어져도 그대로 휘발유 가격에 반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보통휘발유 L당 1400원일 경우 세금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보통휘발유 L당 1400원일 경우 세금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세금 착시효과’가 아예 틀린 얘기는 아니다. 휘발유에는 금액과 상관없이 ℓ당 세금이 붙는다. 교통세 529원, 교육세 79.35원(교통세의 15%), 주행세 137.54원(교통세의 26%)에 부가세(판매가의 10%)를 매긴다. 휘발유값이 ℓ당 1400원이라면 세금만 800원 이상이다. 환율·시차도 국제 유가 하락 효과를 상쇄하는 변수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환율이 오르면 원유를 들여올 때 원화를 더 많이 지급해야 한다”며 “수입한 원유를 국내로 들여와 주유소에 풀 때까지 시간이 걸려 기름값에 반영하는 데 2~3주 정도 시차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유사는 고유가 시절 대규모 이익을 취해왔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불만은 크다.

허은녕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주유소 휘발유값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오피넷’을 만들고, 알뜰주유소가 나오면서 시장이 과거보다 투명해졌다”면서도 “눈에 띄는 휘발유보다 상대적으로 싼 경유는 저유가 인하분을 주유소 판매가격에 덜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서혜 E컨슈머 연구실장은 “정유사가 공급가를 내리더라도 재고 판매 이유를 들어 가격을 따라 내리지 않는 주유소가 있다”며 “2주 정도 시차를 반영하기 때문에 다음 주 가격 추이를 보고 주유하면 좋다”고 조언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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