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판사가 있는데…" 수임료·공탁금 10억 가로챈 변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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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봉 이미지.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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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들에게 받은 수임료와 법원 공탁금 등 10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아 온 40대 현직 변호사가 구속 위기에 몰렸다.

정읍경찰서, 40대 변호사 구속영장 신청 #의뢰인 3명 수임료 등 10억 가로챈 혐의 #변호사법 위반·사기…변호사 "급한 데 써"

 전북 정읍경찰서는 31일 "변호사법 위반과 사기 등의 혐의로 변호사 A씨(44)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A씨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자신에게 사건을 맡긴 의뢰인 3명이 사건 수임료와 공탁금 명목으로 건넨 10억원을 사적 용도로 쓴 혐의를 받고 있다. 정읍 출신인 A씨는 2013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뢰인 일부는 재판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공탁금을 줬는데 A씨가 법원에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공탁금이란 소송 당사자가 민사 소송에서 가압류를 위해 담보로 제공하거나 형사사건 합의를 위해 법원에 맡기는 돈을 말한다. 의뢰인들은 민사 및 형사소송 당사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또 다른 의뢰인에게는 '아는 판사가 있으니 잘 얘기해 사건을 처리해 주겠다'는 취지로 말하고 높은 수임료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의뢰인들은 경찰에서 "A씨가 공탁금을 법원에 안 내 형량 등에서 불이익을 봤다" "수임료를 줬는데 A씨가 변호사로서 임무를 안 해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A씨는 "돈을 개인적으로 급히 쓸 데가 있어서 부득이 법원에 공탁금을 못 냈다"며 일부 혐의는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뢰인들은 A씨의 변호사 신분을 믿고 전혀 의심하지 않다가 뒤늦게 일부 거짓말이 드러나자 지난해 말 전주지검 정읍지청에 A씨를 고소했다.

 검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경찰은 수사에 착수, 고소인 조사와 피고소인 조사를 모두 마친 상태다. 당초 A씨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30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A씨의 요청으로 다음 달 2일로 미뤄졌다. 정읍경찰서 관계자는 "수사는 마무리 단계"라며 "조만간 피의자(A씨)를 구속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북 지역 법조계는 현직 변호사가 거액의 사기 사건 가해자로 지목되자 뒤숭숭한 분위기다. 법조계에 따르면 변호사가 형사사건 피고인이 되면 지방검찰청 검사장이 대한변협에 징계를 의뢰하고, 대한변협은 다시 해당 변호사 소속 지방변호사회에 알린다.

전북지방변호사회 관계자는 "(A씨) 사건은 파악하고 있지만, 아직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변협 차원에서 징계를 논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정읍=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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