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감염 위기 속 발달 장애인 …돌봄 가족은 음성판정에도 운다

중앙일보

입력

A씨가 다니던 인천시 부평구 장애인 주간활동센터.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휴업 중이다. 심석용 기자

A씨가 다니던 인천시 부평구 장애인 주간활동센터.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휴업 중이다. 심석용 기자

인천시 부평구에 거주하는 김모(55·여)씨는 지난 11일 오후 5시30분 발달장애인 아들 A씨(21)와 함께 부평구의 한 장애인 이용시설을 방문했다. 특수체육 강사가 운동을 지도하는 곳으로 1주일에 2번 정도 찾는 시설이었다. 김씨가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A씨는 1시간 동안 줄넘기, 공놀이 등을 했다. 5일 뒤 김씨는 보건소로부터 ‘아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체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상황은 이랬다. 11일 오후 2시 인천시 계양구에 거주하는 B군(13)이 어머니와 함께 이 시설을 방문했다. A씨가 이곳을 찾기 약 3시간 전이었다. 경증 발달 장애인인 B군은 4년째 여기서 운동을 해왔다고 한다. B군은 원장(42)과 함께 운동한 뒤 귀가했다.

며칠 뒤 B군은 코로나19 검체 검사를 받았는데 확진 판정이 나왔다. 조사 결과 B군은 70명이 넘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성남 은혜의 강 교회 신도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교회 예배에 참석한 B군의 아버지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B군과 같은 공간을 이용한 시설 관계자 3명과 발달 장애인 8명도 코로나19 검체검사를 받았다. A씨도 여기에 포함됐다.

생활수칙 버거웠던 자가격리자 가족

A씨 가족이 받은 자가격리대상자의 가족 및 동거인을 위한 생활수칙 안내문. [사진 A씨 가족 제공]

A씨 가족이 받은 자가격리대상자의 가족 및 동거인을 위한 생활수칙 안내문. [사진 A씨 가족 제공]

검체 검사에서 음성 판정이 나왔지만, 이들은 2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A씨도 자가격리 대상이 되면서 장애인 주간활동센터에 가지 못하게 됐다. 담당 구청은 A씨 가족에게 자가격리 관련 생활수칙 안내문을 보내왔다. 안내문에는 ▶자가격리 대상자와 접촉을 제한할 것 ▶독립된 공간을 사용할 것 ▶불가피하게 접촉할 경우 2m 거리를 둘 것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A씨를 홀로 둘 수 없는 가족에게 생활 수칙 준수는 버거운 일이었다. 이들은 자폐증세가 있고 청각에 문제가 있는 중증 발달장애인 A씨를 위해 결국 일상을 포기했다. A씨의 세면부터 식사까지 챙겼고 답답해하는 A씨를 달래는 등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했다.

지난 26일 천신만고 끝에 A씨는 자가격리가 해제됐지만 A씨 가족은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한다. 추후 코로나19와 같은 질병으로 곤란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김씨는 “아이가 음성일 때도 힘들었는데 확진 판정을 받았다면 감당이 안 됐을 것”이라며 “대책이 필요한 것 아닌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돌봄 가족 활동비 제공 등 지원책 마련

A씨가 다니던 인천시 부평구 장애인 주간활동센터. 단축형, 기본형, 확장형으로 반이 나뉘어져 운영된다. A씨는 확장형 반이었다. 심석용 기자

A씨가 다니던 인천시 부평구 장애인 주간활동센터. 단축형, 기본형, 확장형으로 반이 나뉘어져 운영된다. A씨는 확장형 반이었다. 심석용 기자

앞서 제주에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특수학교 개학이 연기된 후 가정에서 돌봄을 받던 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있었다. 이 학생의 어머니는 학교 측에 “코로나19가 걱정돼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6000명이 넘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대구에서는 14명의 장애인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코로나19에 감염되거나 감염 위기에 놓인 장애인이 늘어나자 인천시도 대책을 내놨다. 시는 자가격리에 놓인 장애인의 돌봄 가족에게 시간당 1만3500원씩 활동비를 제공하고 발달 장애인 민간바우처 사업 운영비를 지원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코로나19’ 장애인 부문 대처 매뉴얼 갖춰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회원들이 2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코로나19 장애인 지원 및 대안 부재 복지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회원들이 2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코로나19 장애인 지원 및 대안 부재 복지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코로나19 관련 장애인 확진자 또는 자가격리 대상자 발생 시 매뉴얼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장애인 부모연대 인천지부(부모연대)에 따르면 발달 장애인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거나 자가격리 대상이 되었을 경우 조치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은 없다.

부모연대 관계자는 “발달 장애인 거점 병원 등의 도움을 얻어 관련 인력을 보충하는 등의 방안이 절실하다”며 “별도의 발달 장애인 격리시설을 두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모연대는 자가격리된 발달 장애인을 도울 상황을 대비해 자체적으로 방호복, 고글 등을 구비했다고 한다.

허준수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현재 코로나19 관련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별해 대응하는 매뉴얼이 없다”며 “자가격리가 어려운 장애인을 위한 생활치료센터를 지역사회에서 구역당 1곳 이상 배치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