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막아선 천안함 유족 윤청자 “김정은 부른다는 게 분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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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분향하던 중 유가족 윤청자 여사의 질문을 듣고 있다.강정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분향하던 중 유가족 윤청자 여사의 질문을 듣고 있다.강정현 기자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5회 서해수호의 날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탑에 헌화와 분향을 하는 순간 하얀 비옷을 입은 한 백발노인이 다가왔다. 그 노인은 문 대통령의 분향을 막으며 “대통령님, 대통령님, 누구 소행인가 말씀 좀 해주세요”라고 호소하듯 말했다. 문 대통령을 비롯해 김정숙 여사 등 주변 사람들도 당황하는 눈치였다.

이 노인은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막내아들을 잃은, ‘천안함 46용사’ 중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77) 여사다. 그는 아들을 떠나보낸 지 3개월 만인 2010년 6월 민 상사의 사망 후 받은 유족 보상금 1억원을 청와대에 성금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윤 여사는 “여태까지 누구 소행이라고 진실로 확인된 적이 없다. 그래서 이 늙은이 한 좀 풀어달라”고 했다. 천안함 공격이 북한 소행이라는 것을 문 대통령이 명확히 해달라는 요구로 보였다. 문 대통령은 잠시 분향을 멈춘 뒤 윤 여사에게 “정부 입장에 변함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윤 여사는 “지금 다른 사람들이 이게 어느 짓인지 모르겠다고 대한민국에서 하는 짓인지, 저기인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저 가슴이 무너져요”라고 토로했다. 문 대통령은 “걱정 마세요”라고 답했다. 윤 여사는 “이 늙은이 한좀 풀어주세요, 맺힌 한 좀”이라고 하자, 문 대통령은 다시 “걱정 마세요”라고 했다. 윤 여사가 “대통령께서 꼭 밝혀 주세요”라고 하며 대화는 마무리 지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분향하는 가운데 한 유가족이 대통령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강정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분향하는 가운데 한 유가족이 대통령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강정현 기자

윤 여사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을 향해 이같이 호소한 배경에 대해 토로했다.

왜 그런 얘기를 하셨나요
북한 소행이라고 속 시원히 밝힌 적이 없잖아요. 그런데 북한의 김정은이는 부른다고 하고. 그놈이 주도해서 천안함을 쳐부쉈다는데 그게 너무 분하잖아요. 그래서 ‘북한 소행이라고 확실히 밝혀달라’고 그랬어요. 이 늙은이 뼈에 맺힌 한 좀 풀어달라고 그랬어요.
김정은 위원장이 방한해선 안 된다는 의미인가요
김정은이 그놈들은 그렇게 죄를 짓고, 사람을 그렇게 희생시키고도 벌을 안 받잖아요. 억울해서 죽을 수도 없어요. 분해서 억울해서.
이전에는 왜 이런 얘기를 하지 않으셨는지.
말은 하고 싶었지만, 그 전에는 기회가 없었어요. 문재인 대통령 한 번 본 적이 없어요. 처음 봤어요. 어떻게 떼를 쓸 수도 없고…. 마침 묘역에 와서 그렇게 말을 했어요.

문 대통령은 이날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서해수호의 날은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도발 등 북한의 무력 도발로 서해에서 희생된 55인을 기리는 날이다. 올해로 5회째다. 문 대통령은 2018년엔 베트남 순방을 이유로, 지난해엔 대구 로봇산업 육성전략 보고회 참석을 이유로 불참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북한과 관련한 직접적 언급은 하지 않았다.

한영익ㆍ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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