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코로나19가 감별하는 정부 신뢰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윤설영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띵동. 밤 9시. 스마트폰 알람이 울린다. 후쿠이(福井)현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자 1명이 발생했다는 뉴스 속보다. 47개 도도부현(都道府県) 중 서른 아홉번째 발생 지역이다.

띵동. 이번엔 미에(三重)현 요카이치(四日市)시다. 시장이 미에현 9번째 확진자 관련 기자회견을 한다고 한다.

코로나19가 발생한 뒤론, 한밤중에도 스마트폰 알람이 울리는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코로나19 감염자 현황을 발표하기 때문이다. 제각각 발표에 감염자 수도 찔끔찔끔 나오니 전체적인 감을 잡기가 어렵다.

일본 정부의 코로나19 관련 전문가회의는 지난 16일 “폭발적 감염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 말에 꼭 끼어맞춘 듯 추가 확진자는 하루 평균 40명 선을 넘지 않고 있다.

어째서 일본에선 감염자 수의 폭발적 증가는 없는 걸까. 이 물음에 명쾌한 설명을 내놓는 사람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다만 “어떻게든 잘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회의의 결론이다.

글로벌아이 3/20

글로벌아이 3/20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대충 짐작은 간다. 지난주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한 의사가 “지금 의료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며 이메일을 보내왔다.

20대 여성이 2월 말 발열과 기침 증상을 보여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엑스레이 검사에서 폐렴 증상은 없어, 약을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그로부터 두 번 더 병원을 찾았다. 37도 후반의 열이 열흘 넘게 지속되자 의사는 코로나19 감염을 의심했고, 정부 지침에 따라 ‘귀국자·접촉자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어 검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검사요청은 거부당했다. “(폐렴 증상이 없으니) 긴급하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이 의사의 설명에 따르면, 본인이 밀접접촉자로 의심돼 신고를 하더라도 검사를 받기는 요원하다. “정부가 밀접접촉자는 모두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자진신고는 있을 수 없다”는 게 보건당국의 설명이다. 그는 “일본 정부 설명과 현장은 너무 다르다”고 개탄했다.

폭발적 감염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서 방역에 성공했다고 할 순 없다. 굳이 음모설까지 꺼내지 않더라도, 많은 일본 국민들이 현재 발표된 감염자 숫자는 진짜가 아니라고 믿고 있다. “내 건강을 정부가 책임져주지 않는다”며 ‘자기 책임’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기고 있다.

인간만 코로나19 감염을 감별하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19도 정부에 대한 신뢰를 감별하고 있다.

윤설영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