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와 연관성 제기한 현수막 붙이면 명예훼손 처벌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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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포교활동의 피해자로 구성된 전국신천지피해연대 소속 회원이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신천지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신천지 포교활동의 피해자로 구성된 전국신천지피해연대 소속 회원이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신천지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정치인을 특정 종교 단체와 연관지으면 명예훼손으로 처벌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신계용 전 과천시장의 신천지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한 시민단체 총무에게 최근 무죄가 확정됐다.

광화문 촛불집회 현수막에 담긴 내용은

신 전 시장이 시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2016년 12월 31일 신천지대책전국연합은 서울 광화문 일대 5곳에 “박근혜의 사람, 과천시장 신계용은?”, “40년간 사이비 세뇌 양육된 신도, 나라 망친다! 즉각 퇴진!” 등의 문구가 새겨진 현수막을 내걸었다.

해당 현수막 안에는 “신천지의 과천 건축허가 분쟁, 신천지 쉬캔 과천시장 선거개입 사건, 신천지 건축법위반 묵인 등”의 내용도 담고 있다. 이에 신 전 시장은 허위사실을 퍼뜨려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현수막을 건 이 단체 총무를 고소했다.

신계용 당시 과천시장은 2016년 12월 31일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 자신의 비방하는 현수막이 게시된 것과 관련해 경찰에 서울 종로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 게시된 현수막. [뉴시스]

신계용 당시 과천시장은 2016년 12월 31일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 자신의 비방하는 현수막이 게시된 것과 관련해 경찰에 서울 종로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 게시된 현수막. [뉴시스]

유죄→무죄→무죄…왜?

1심에서는 명예훼손죄가 인정돼 벌금형이 내려졌지만  지난해 12월 항소심에서는 원심을 뒤집고 무죄가 선고됐다. 이어 대법원은 지난 26일 이 판결의 무죄를 확정했다.

결과가 바뀐 이유는 이렇다. 항소심은 현수막에 쓰인 것만으로는 신 전 시장이 특정 종교 단체 간에 각종 이권을 주고받는 관계가 있는 것처럼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한 것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선 법원은 현수막에 쓰인 글들이 신 전 시장과 특정 종교단체 간에 이권을 주고받는 관계가 있다는 내용을 기재한 것은 아니라고 봤다. 이보다는 이를 규명할 특검 수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에 가까운 일종의 ‘의견’ 개념이라는 것이다. 또 신 전시장이 과천시장이라는 선출직 공직자고, 공직자 신분이 아닌 개인으로서 사적인 부분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현수막의 내용이 고소인의 명예와 관련된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 하더라도”라고 운을 떼며 “당시 피고인이 이 사건 현수막의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진실한 것으로 믿었고, 또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이 사건 현수막의 내용은 과천시장인 고소인의 시정활동에 관한 내용으로 사회의 여론 형성 내지 토론에 기여하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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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분위기’도 언급됐다. 이 사건 현수막이 게시될 당시 이른바 ‘비선실세’, ‘사이비 종교’ , ‘대기업 로비’, ‘승마사업’ 등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과 문제제기가 난무하던 점 등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기준은?

해당 법원 판결을 통해 선출직 공무원 등 공인과 특정 종교와의 유착 의혹을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최근 경기도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신천지 신도’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을 찾아 처벌해달라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바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달 28일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경기도 입수 신천지 신도명단 전수조사 결과 및 코로나19 대응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경기도]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달 28일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경기도 입수 신천지 신도명단 전수조사 결과 및 코로나19 대응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경기도]

법조계에서는 법원의 허위 사실 유포 기준은 참‧거짓을 따지기 보다는 그렇게 믿을만한 이유가 있었는지를 가리는 것에 가깝다고 입을 모은다. 한 서초동 변호사는 “대법원이 판단하는 ‘진실한 사실’이란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사실이어야 한다는 뜻”이라며 “사실상 세부적인 내용은 진실과 약간 다르거나 과장이 있더라도 무방할 수 있다”고 했다. 또 행위자가 진실로 믿었고, 그렇게 믿을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다고 한다.

또한 공공의 이익과 합치되는 지도 판단한다. 공무원 내지 공적인물과 같은 공인인지, 그 표현이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 사안인지 혹은 사적인 영역인지다. 피해자가 명예훼손적 위험을 자초한 것인지 여부도 살핀다고 한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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