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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코로나 미스터리’…고위층 줄줄이 감염·사망, “210명 사망” 주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국제사회의 의구심을 키우는 국가가 있다. 중동의 이란이다.

29일 신종 코로나로 국회의원 사망 #감염된 공직자 수 세계서 가장 많아 #“지도층 中 접촉 많고, 우선 검사 대상” #“사망 210명” 주장, 정부 모르거나 은폐 #“정부, 국민 분노 통제불능 상태 우려”

우선 이란에선 국가 지도층이 잇따라 감염되거나 사망하고 있다. 또 사망자의 숫자를 놓고 정부 공식 발표와 일각의 폭로가 엇갈린다. 정부의 발표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전 세계의 치사율 평균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란에선 왜 이처럼 미스터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지난 29일 이란 테헤란에서 한 여성이 마스크를 쓰고 이란의 국기를 그린 벽화 앞을 걸어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9일 이란 테헤란에서 한 여성이 마스크를 쓰고 이란의 국기를 그린 벽화 앞을 걸어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부통령·국회의원·차관도 감염 … “고위층, 중국인 접촉 많아” 

정부 고위 인사들이 줄줄이 감염되면서 이란 국민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모하마드 알리 라마자니 다스타크 이란 국회의원이 신종 코로나로 인해 사망했다고 영국 인디펜던트가 지난 29일(현지시간) 이란 ISNA통신의 보도를 인용해 전했다.

신종 코로나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진 마수메 엡테카르 이란 부통령. [EPA=연합뉴스]

신종 코로나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진 마수메 엡테카르 이란 부통령. [EPA=연합뉴스]

이에 앞서 지난 27일 이란의 최고위 여성 관료인 마수메 엡테카르 이란 부통령이 신종 코로나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현재 자가 격리 중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이라즈 하리르치 보건부 차관, 모하바 졸노르 의원, 마흐무드 사데기 의원 등 여러 명의 고위 당국자들이 감염됐다. 이 가운데 이란 정부의 주바티칸 대사를 역임한 성직자 하디 호스로샤히는 사망했다.

특히 엡테카르 부통령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고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국무회의 다음 날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로 인해 로하니 대통령 등 다른 고위 인사 중에서 추가 감염자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라즈 하리르치 이란 보건부 차관(왼쪽)이 지난달 24일 기자회견에서 기침을 하고, 땀을 닦고 있다. 그는 이후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AFP=연합뉴스]

이라즈 하리르치 이란 보건부 차관(왼쪽)이 지난달 24일 기자회견에서 기침을 하고, 땀을 닦고 있다. 그는 이후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AFP=연합뉴스]

이란은 지금까지 신종 코로나에 감염된 공직자의 수가 가장 많은 국가로 알려졌다.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우선 일반인에 비해 고위층이 이란에 사는 중국인들과 자주 접촉한다는 점이다. 또 의심 증상자들 가운데 고위층이 먼저 검사를 받기 때문에 감염 여부를 빨리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특훈교수는 “미국의 오랜 경제 제재 속에서 이란은 중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사업 등을 이유로 이란에 거주하는 중국인 대부분이 수도 테헤란에 산다. 지방에 사는 저소득층보다 테헤란에 거주하는 중산층·고위층이 사업이나 교류 등을 목적으로 중국인과 자주 접촉한다”고 말했다.

“사망자 210명” vs “완치자 123명” … 의혹 증폭  

1일 이란 보건부에 따르면 이란 내 신종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는 54명이고, 확진자는 978명이다. 사망자의 경우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이란 정부의 발표를 기준으로 이란 내 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치사율)은 약 5.5%로 알려졌다. 전 세계 평균(약 3%)보다 높다. 이란이 첫 확진 사망자를 발표한 건 지난달 19일이었다. 다른 발병국에 비해 확진자와 사망자가 늦게 발생했다. 그런데도 사망자가 빠르게 늘어난 것이다.

지난 24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 약국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마스크를 구입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4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 약국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마스크를 구입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때문에 일각에선 실제 확진자와 사망자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의혹이 계속 나오고 있다. 영국 BBC는 지난 28일 이란 병원 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신종 코로나로 인한 이란 내 사망자는 최소 210명”이라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이란 내 병원에서 발표한 집계를 종합하면 27일 밤까지 이란 전역에서 최소 210명이 신종 코로나에 감염돼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란 정부가 발표한 사망자 수보다 약 5배 많다. BBC는 “사망자 대부분이 수도인 테헤란과 최초 발병지인 곰에서 발생했다"고 전했다.

지난 25일 이란 테헤란에서 지하철을 소독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5일 이란 테헤란에서 지하철을 소독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하지만 이란 정부는 이런 보도 내용에 대해 “전혀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이라고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란이 주장하는 신종 코로나 완치자 숫자 역시 의문이다. 이란 내에선 29일 기준 신종 코로나 완치자가 123명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이 통계 역시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다. 키아누시 자한푸르 이란 보건부 대변인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이란은 훌륭한 의료 수준으로 최소 123명을 치료했다. 이는 싱가포르·이탈리아·일본·한국보다 많다"고 적었다.

확진 검사 제대로 못하거나 의도적 은폐 가능성  

사망자 수를 놓고 이란 정부와 일각의 폭로가 엇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두 가지 상반된 이유가 있을 수 있다고 진단한다. 우선 이란 정부가 정확한 확진자와 사망자 인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의약품과 의료장비 도입이 어려워지면서 신종 코로나 검사와 치료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가 국민 통제를 위해 사망자 수를 의도적으로 은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란은 심각한 빈부 격차와 높은 실업률 탓에 지난해부터 반정부 시위가 이어져 왔다. 이런 상황에서 신종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까지 폭증한다면 민심 이반 현상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란 테헤란 버스 안에서 여성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란 테헤란 버스 안에서 여성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희수 교수는 “이란에는 신종 코로나 진단 키트도 절대적으로 부족해 진단조차 어려울 수 있다”면서도 “안 그래도 민생이 도탄에 빠진 상황에서 국민의 불안감과 분노가 통제 불능 상태에 이를까 봐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축소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국무부는 28일 스위스 정부를 통해 이란에 신종 코로나 사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란 외무부는 “웃기는 소리”라면서 단칼에 거절했다고 알려졌다.

한편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중동 국가는 29일 10개국으로 늘어났다. 이날 카타르에서도 최근 이란을 다녀온 한 남성이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바레인·이라크·오만·레바논 등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중동 국가들의 확진자 대부분이 최근 이란을 방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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