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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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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

“매캐하고 짜고 고리타분하고 시척지근한 냄새가 밖에서 갓 들어서면 눈이 실 만큼 독했다. 이 냄새는 방에도 옷에도 이부자리에도 배어 있었다. 내 몸에서도 이 냄새가 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냄새를 부끄러워하거나 싫어하면 안 된다.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와 오빠가 이 냄새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이 냄새를 맡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어느 날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못난 부모 동기에게 복수하는 뜻에서도 이 냄새에 길들여져야하는 것이다.”

박완서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

“박완서 소설 속 한국, 진짜 끔찍하다. 가족 호러 좋아하고 ‘기생충’에 열광하는 서양 사람들에게 박완서를 던져주면 몸서리치면서 좋아할 것 같다.” 누군가 이런 트윗을 올렸다. 동감이다.

타계 9주기를 맞이한 박완서의 책이 여러 권 나왔다.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는 중·단편 10편을 모았다. 위 문장은 그중 1975년 소설 ‘도둑맞은 가난’에 나온다. 가난한 여주인공이, 자신의 동거남이 알고 보니 가난을 공부하러 신분을 속인 부잣집 도련님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는 얘기다. 부자들의 위선, 속물주의에 대한 염증이라는 박완서 문학의 특징이 드러난다. 특히 ‘냄새’에 대한 저 묘사에서 영화 ‘기생충’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한국전쟁 중 오빠와 숙부를 잃고 이후 남편과 아들을 떠나보낸 박완서는 “삶이란 그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살아내야’ 하는 과정의 연속임을 전 생애와 문학을 통해 보여줬다”(손유경 서울대 교수)는 평을 받는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