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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31일 EU 탈퇴… "브렉시트는 미국에서 텍사스 빠진 격"

중앙일보

입력

보리슨 존슨 영국 총리가 29일(현지시간) 영국 의회에서 브렉시트와 관련해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보리슨 존슨 영국 총리가 29일(현지시간) 영국 의회에서 브렉시트와 관련해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안녕(adieu, goodbye)이 아닌 또 보자(au revoir, see you)”

영국·EU 57년만에 '정치적 이혼' 도장찍어 #31일 밤 11시 정치적 1단계 브렉시트 발효 #'노딜 브렉시트'의 경우 세계 경제에 폭탄 #6월 30일 '전환기 연장시한'에 주목해야 #연장 무산되면 '노딜 공포' 엄습할 수 있어

29일(현지시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의 마지막 절차를 마무리한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의회 본회의장에는 각 나라 말 인사와 함께 눈물과 환호가 교차했다. 이별할 때 부르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석별의 정)’이 울려 퍼졌고, 의원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부둥켜안기도 했다. 2016년 6월 국민투표 이후로 3년 7개월 만에 영국과 EU의 결별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에 따르면 유럽의회는 이날 EU 탈퇴협정에 대한 본의회 표결을 진행, 찬성 621표, 반대 49표, 기권 13표의 압도적인 지지로 비준했다. 브렉시트의 마지막 절차였던 유럽의회 비준이 마무리됨에 따라 영국은 예정대로 31일 오후 11시(한국 시간 2월 1일 오전 8시) EU와 결별한다. 1973년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 이후 47년 만이다.

영국은 EU 첫 탈퇴국으로, EU 각 기구에 걸렸던 영국 국기는 내려가고, 외교 채널도 단절된다. 영국에 할당된 유럽의회 의석 73석은 사라지고, 이 가운데 27석만 다른 EU 회원국 출신 의원들로 충당된다.

유럽의회 의원들은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냈다. 이탈리아 정치인 데이비드 사솔리 유럽의회 의장은 “영국이 EU를 떠나지만, 항상 유럽의 일부일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안녕’ 대신 ‘또 보자’라고 말하겠다”고 말했다. 영국 노동당 소속 주드키어턴-달링 의원은 눈물을 참으며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날”이라고 했다. 후안 로페즈 유럽의회 의원은 “고통의 끝”이라면서도 “모두가 이기는 윈윈 협상이 아니라 전형적인 실패하는 협상이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브렉시트 이후(1월 31일~)남은 일정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브렉시트 이후(1월 31일~)남은 일정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반대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지난해 12월 조기 총선에서 ‘브렉시트 완수’를 공약으로 내걸고 압승한 그는 유럽의회 표결이 이뤄지는 동안 페이스북 생중계를 통해 “EU와의 위엄있는 결별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브렉시트는 위대한 순간이자 희망과 기회”라고 외쳤다.

외신은 브렉시트로 EU와 영국 모두 손실을 봤다며, EU의 국제적 위상은 꺾이고, 영국의 경제성장은 더뎌질 것으로 내다봤다. EU는 27개 회원국, 4억5000만명의 인구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8%를 책임지는 강력한 경제 거인으로 남지만, 영국은 경제 순위가 중국·일본 아래로 떨어진다. 브렉시트 후 영국의 GDP는 5%포인트 성장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디언은 “대부분의 유럽의회 의원들이 브렉시트에 대한 깊은 슬픔을 말하며 영국이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결정은 ‘영국과 EU는 공존할 수 없다’는 협소한 시각의 승리”라면서 “영국은 이제 미국·중국·EU 등 강대국들 사이에서 홀로 경쟁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EU가 영국을 잃은 건, 규모·거리·영향력 등 여러 면에서 미국이 텍사스를 잃은 것과 동일하다”면서 “EU가 큰 패배를 했다”고 평가했다.

영국 의회 밖에서 한 시위자가 브렉시트 반대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 의회 밖에서 한 시위자가 브렉시트 반대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은 그간 EU 내 둘째 경제 강국으로 EU 예산의 12%를 담당해왔다. EU는 영국의 탈퇴로 경제 규모가 미국보다 작아질 뿐만 아니라 벌써 영국의 빈자리로 인해 예산문제로 균열이 일고 있다. EU가 영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2018년 기준 영국 수출의 45%, 수입의 53%를 모두 EU가 차지했다.

다행히도 당분간 경제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다. 31일부로 영국과 EU는 ‘이혼 도장’을 찍고 남남이 됐지만, 1년간 준비 기간을 갖기로 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일단 EU 집행부와 산하 기구에서 모두 탈퇴하는 정치·외교적 결별을 시작으로, 올해 말까지 세부규정을 마련해 경제적 브렉시트를 준비할 계획이다. 일단 그때까지 영국은 EU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 잔류한고, 자유로운 주민 이동도 유지된다. 당분간 EU에 분담금도 내야한다.

여기서 문제는 영국이 올해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가능성이 작아 ‘노딜 브렉시트’(아무런 합의 없는 영국의 EU 탈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미칠 우려가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심지어 존슨 총리는 FTA 합의 없이도 경제적 브렉시트를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우려를 키우고 있다.

결국 EU를 떠난 영국의 앞날은 지금부터의 협상을 어떻게 매듭짓느냐에 달렸다. 브렉시트의 다음 관문은 오는 6월 30일 예정된 ‘준비 기간 연장시한’인데, 영국이 이때까지 협상을 연장하지 않을 경우 ‘노딜’ 공포는 더욱 고조된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싱크탱크 랜드유럽 보고서를 인용해 “영국과 EU 관계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계속되면 올해 영국 경제에 44억 파운드(약 6조7858억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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